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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探求】『茶の本』전문 본문
유럽의 종교적 도덕률 '기사도'에 대한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의 '무사도'가 있다면
한편엔 일본만의 독특한 정신문화를 담고 있는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의 '차의 책'이 있다.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 문명국가'에 못지 않는 자신만의 문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욕구와 동시에, 다른 동양의 국가와는 다르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目次
第一章 人情の碗
茶は日常生活の俗事の中に美を崇拝する一種の審美的宗教すなわち茶道の域に達す――茶道は社会の上下を通じて広まる――新旧両世界の誤解――西洋における茶の崇拝――欧州の古い文献に現われた茶の記録――物と心の争いについての道教徒の話――現今における富貴権勢を得ようとする争い
제1장 인정의 공기
차는 일상생활의 속사 속에 미를 숭배하는 일종의 심미적 종교 즉 다도의 경지에 도달한다 - 다도는 사회의 위아래를 통해 널리 퍼진다 - 신구 양세계의 오해 - 서양에서의 차의 숭배 - 유럽의 옛 문헌에 나타난 차의 기록 - 물건과 마음의 싸움에 대한 도교도의 이야기 - 현금의 부귀권세를 얻으려는 싸움
第二章 茶の諸流
茶の進化の三時期――唐とう、宋そう、明みんの時代を表わす煎茶せんちゃ、抹茶ひきちゃ、淹茶だしちゃ――茶道の鼻祖陸羽――三代の茶に関する理想――後世のシナ人には、茶は美味な飲料ではあるが理想ではない――日本においては茶は生の術に関する宗教である
제2장 차의 제류
차의 진화의 3시기--당, 송, 명의 시대를 나타내는 센차, 녹차, 우려낸 차--다도의 비조 리쿠우--삼대의 차에 관한 이상--후세의 시나인에게는, 차는 맛있는 음료이긴 하지만 이상은 아니다--일본에 있어서는 차는 삶의 술에 관한 종교이다.
第三章 道教と禅道
道教と禅道との関係――道教とその後継者禅道は南方シナ精神の個人的傾向を表わす――道教は浮世をかかるものとあきらめて、この憂うき世の中にも美を見いだそうと努める――禅道は道教の教えを強調している――精進静慮することによって自性了解じしょうりょうげの極致に達せられる――禅道は道教と同じく相対を崇拝する――人生の些事さじの中にも偉大を考える禅の考え方が茶道の理想となる――道教は審美的理想の基礎を与え禅道はこれを実際的なものとした
제3장 도교와 선도
도교와 선도의 관계 - 도교와 그 후계자 선도는 남방시나 정신의 개인적 경향을 나타낸다 - 도교는 속세를 앓는 것으로 체념하고, 이 근심스러운 세상에도 미를 찾으려 애쓴다 - 선도는 도교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다 - 정진정려함으로써 자성양해자승려의 극치에 도달한다 - 선도는 도교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숭배한다 -
第四章 茶室
茶室は茅屋ぼうおくに過ぎない――茶室の簡素純潔――茶室の構造における象徴主義――茶室の装飾法――外界のわずらわしさを遠ざかった聖堂
제4장 다실
다실은 모옥방옥에 지나지 않는다--다실의 간소 순결--다실 구조에 있어서의 상징주의--다실 장식법--외계의 번거로움을 멀리한 성당
第五章 芸術鑑賞
美術鑑賞に必要な同情ある心の交通――名人とわれわれの間の内密の黙契――暗示の価値――美術の価値はただそれがわれわれに語る程度による――現今の美術に対する表面的の熱狂は真の感じに根拠をおいていない――美術と考古学の混同――われわれは人生の美しいものを破壊することによって美術を破壊している
제5장 예술감상
미술 감상에 필요한 동정어린 마음의 교통 - 명인과 우리 사이의 은밀한 묵계 - 암시의 가치 - 미술의 가치는 단지 그것이 우리에게 말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 - 현 미술에 대한 표면적인 열광은 진정한 느낌에 근거하지 않는다 - 미술과 고고학의 혼동 - 우리는 삶의 아름다운 것을 파괴함으로써 미술을 파괴하고 있다
第六章 花
花はわれらの不断の友――「花の宗匠」――西洋の社会における花の浪費――東洋の花卉栽培かきさいばい――茶の宗匠と生花の法則――生花の方法――花のために花を崇拝すること――生花の宗匠――生花の流派、形式派と写実派
제6장 꽃
꽃은 우리들의 부단한 친구 - '꽃의 종장' - 서양사회에서 꽃의 낭비 - 동양화훼 재배서 재배 - 차의 종장과 생화의 법칙 - 생화의 방법 - 꽃을 위해 꽃을 숭배할 것 - 생화의 종장 - 생화의 유파, 형식파와 사실파
第七章 茶の宗匠
芸術を真に鑑賞することはただ芸術から生きた力を生み出す人にのみ可能である――茶の宗匠の芸術に対する貢献――処世上に及ぼした影響――利休の最後の茶の湯
제7장 다도의 종장
예술을 진정으로 감상하는 것은 오직 예술로부터 살아 있는 힘을 창출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 차의 종장의 예술에 대한 공헌 - 처세상에 미친 영향 - 리큐의 마지막 찻물
第一章 人情の碗
茶は薬用として始まり後飲料となる。シナにおいては八世紀に高雅な遊びの一つとして詩歌の域に達した。十五世紀に至り日本はこれを高めて一種の審美的宗教、すなわち茶道にまで進めた。茶道は日常生活の俗事の中に存する美しきものを崇拝することに基づく一種の儀式であって、純粋と調和、相互愛の神秘、社会秩序のローマン主義を諄々じゅんじゅんと教えるものである。茶道の要義は「不完全なもの」を崇拝するにある。いわゆる人生というこの不可解なもののうちに、何か可能なものを成就しようとするやさしい企てであるから。
차는 약용으로 시작하여 이후 음료가 된다. 시나(중국)에 있어서는 8세기에 고아한 놀이의 하나로서 시가의 경지에 이르렀다. 15세기에 이르러 일본은 이를 높이고 일종의 심미적 종교, 즉 다도로까지 나아갔다. 다도(茶道)는 일상생활의 속사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을 숭배하는 데서 비롯된 일종의 의식으로 순수와 조화, 상호애의 신비, 사회질서의 낭만주의를 순순히 가르치는 것이다. 다도의 요의는 '불완전한 것'을 숭배하는데 있다. 소위 말하는 인생이라는 이 불가해한 것 중에서 무언가 가능한 것을 성취하려는 아름다운 계획이기 때문이다.
茶の原理は普通の意味でいう単なる審美主義ではない。というのは、倫理、宗教と合して、天人てんじんに関するわれわれのいっさいの見解を表わしているものであるから。それは衛生学である、清潔をきびしく説くから。それは経済学である、というのは、複雑なぜいたくというよりもむしろ単純のうちに慰安を教えるから。それは精神幾何学である、なんとなれば、宇宙に対するわれわれの比例感を定義するから。それはあらゆるこの道の信者を趣味上の貴族にして、東洋民主主義の真精神を表わしている。
차의 원리는 보통의 의미로 단순한 심미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윤리, 종교와 아울러 천인천신에 관한 우리의 일체의 견해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생학이다, 청결을 엄격하게 가르치니까. 그것이 경제학이다, 복잡한 사치라기보다는 단순하게 위안을 가르치니까. 그것은 정신기하학이다, 우주에 대한 우리의 비례감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이 방면의 신자들을 취미상의 귀족으로 삼아 동양민주주의의 참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日本が長い間世界から孤立していたのは、自省をする一助となって茶道の発達に非常に好都合であった。われらの住居、習慣、衣食、陶漆器、絵画等――文学でさえも――すべてその影響をこうむっている。いやしくも日本の文化を研究せんとする者は、この影響の存在を無視することはできない。茶道の影響は貴人の優雅な閨房けいぼうにも、下賤げせんの者の住み家にも行き渡ってきた。わが田夫は花を生けることを知り、わが野人も山水を愛めでるに至った。俗に「あの男は茶気ちゃきがない」という。もし人が、わが身の上におこるまじめながらの滑稽こっけいを知らないならば。また浮世の悲劇にとんじゃくもなく、浮かれ気分で騒ぐ半可通はんかつうを「あまり茶気があり過ぎる」と言って非難する。
일본이 오랫동안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던 것은 자성에 일조하여 다도의 발달에 매우 적합했다. 우리의 주거, 습관, 의식, 도칠기, 그림 등--문학조차도--모두 그 영향을 받았다. 적어도 일본문화를 연구하고자 하는 자는 이 영향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다도의 영향은 귀인의 우아한 규방 경방에도 미천한 자들의 거처에도 미치게 되었다. 우리 촌부는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 야인도 산수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흔히 '저 남자는 찻기(장난기)가 없다'고 말한다. 만약 사람이 우리 신상에 일어나는 진지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모른다면 말이다. 모른다면. 또 속세의 비극에 둔감하지도 않고, 들뜬 기분으로 떠드는 아는 체하는 사람들을 "너무 장난기가 많다"며 비난한다.
よその目には、つまらぬことをこのように騒ぎ立てるのが、実に不思議に思われるかもしれぬ。一杯のお茶でなんという騒ぎだろうというであろうが、考えてみれば、煎せんずるところ人間享楽の茶碗ちゃわんは、いかにも狭いものではないか、いかにも早く涙であふれるではないか、無辺を求むる渇かわきのとまらぬあまり、一息に飲みほされるではないか。してみれば、茶碗をいくらもてはやしたとてとがめだてには及ぶまい。人間はこれよりもまだまだ悪いことをした。酒の神バッカスを崇拝するのあまり、惜しげもなく奉納をし過ぎた。軍神マーズの血なまぐさい姿をさえも理想化した。してみれば、カメリヤの女皇に身をささげ、その祭壇から流れ出る暖かい同情の流れを、心ゆくばかり楽しんでもよいではないか。象牙色ぞうげいろの磁器にもられた液体琥珀こはくの中に、その道の心得ある人は、孔子こうしの心よき沈黙、老子ろうしの奇警、釈迦牟尼しゃかむにの天上の香にさえ触れることができる。
남의 눈에는 하찮은 일을 이렇게 떠들어 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수 있다. 차 한 잔 가지고 무슨 소동이냐고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인간 향락의 찻잔은 어찌나 좁은지, 어찌나 빨리 눈물로 넘치지 않는지 무변을 추구하는 갈증이 풀리지 않아 단숨에 마셔버리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찻잔을 아무리 쳐도 나무랄 것이 없다. 인간은 이보다 더 나쁜 짓을 했다. 술의 신 박카스를 숭배하는 나머지 아낌없이 봉납을 너무 많이 했다. 군신 마스의 피비린내 나는 모습도 이상화했다. 그렇다면 카멜리아의 여황에게 몸을 바치고 그 제단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동정의 흐름을 마음껏 즐겨도 되지 않을까. 상아색 조예색 자기에 담긴 액체 호박 속에 그 길을 터득한 사람은 공자의 마음 좋은 침묵, 노자의 기경, 석가모니 부처의 천상 향기만 접할 수 있다.
おのれに存する偉大なるものの小を感ずることのできない人は、他人に存する小なるものの偉大を見のがしがちである。一般の西洋人は、茶の湯を見て、東洋の珍奇、稚気をなしている千百の奇癖のまたの例に過ぎないと思って、袖そでの下で笑っているであろう。西洋人は、日本が平和な文芸にふけっていた間は、野蛮国と見なしていたものである。しかるに満州の戦場に大々的殺戮さつりくを行ない始めてから文明国と呼んでいる。近ごろ武士道――わが兵士に喜び勇んで身を捨てさせる死の術――について盛んに論評されてきた。しかし茶道にはほとんど注意がひかれていない。この道はわが生の術を多く説いているものであるが。もしわれわれが文明国たるためには、血なまぐさい戦争の名誉に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するならば、むしろいつまでも野蛮国に甘んじよう。われわれはわが芸術および理想に対して、しかるべき尊敬が払われる時期が来るのを喜んで待とう。
자신에게 존재하는 위대한 것의 작은 자태를 느낄 수 없는 사람은 타인에게 존재하는 작은 자태의 위대함을 간과하기 쉽다. (Those who cannot feel the small appearance of the great thing that exists in themselves are likely to overlook the greatness of the small appearance that exists in others.) 일반 서양인은 찻물을 보고 동양의 진기, 치기를 부리는 천백 가지 기벽의 다른 예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소매 아래서 웃고 있을 것이다. 서양인들은 일본이 평화로운 문예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야만국으로 간주했었다. 그런데도 만주의 전쟁터에 대대적인 살육살육을 감행하면서 문명국이라고 부른다. 최근 부시도--우리 병사로 하여금 기뻐하며 몸을 버리게 하는 죽음의 기술에 대해 활발히 논평해 왔다. 그러나 다도에는 거의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다. 이 길은 우리 삶의 기술을 많이 설파하고 있는 것인데. 만약 우리가 문명국이 되기 위해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명예에 의지해야 한다면 차라리 언제까지나 야만국을 감수하자. 우리는 우리의 예술과 이상에 대해 마땅한 존경을 받는 시기가 오기를 기꺼이 기다리자.
いつになったら西洋が東洋を了解するであろう、否、了解しようと努めるであろう。われわれアジア人はわれわれに関して織り出された事実や想像の妙な話にしばしば胆きもを冷やすことがある。われわれは、ねずみや油虫を食べて生きているのでないとしても、蓮はすの香を吸って生きていると思われている。これは、つまらない狂信か、さもなければ見さげ果てた逸楽である。インドの心霊性を無知といい、シナの謹直を愚鈍といい、日本の愛国心をば宿命論の結果といってあざけられていた。はなはだしきは、われわれは神経組織が無感覚なるため、傷や痛みに対して感じが薄いとまで言われていた。
언젠가는 서양이 동양을 이해할 것이다.우리 아시아인은 우리에 관해 빚어진 사실이나 상상의 묘한 이야기에 자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 있다. 우리는 쥐나 유충을 먹고 살지는 않더라도 연꽃 향을 피우며 산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부질없는 광신인가, 그렇지 않으면 멸시해 버린 일락이다. 인도의 심령성을 무지라 하고, 중국의 근직을 우둔이라 하고, 일본의 애국심을 숙명론의 결과라 하며 비웃었다. 심지어 우리는 신경조직이 무감각해져 상처나 통증에 대한 느낌이 희박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西洋の諸君、われわれを種にどんなことでも言ってお楽しみなさい。アジアは返礼いたします。まだまだおもしろい種になることはいくらでもあろう、もしわれわれ諸君についてこれまで、想像したり書いたりしたことがすっかりおわかりになれば。すべて遠きものをば美しと見、不思議に対して知らず知らず感服し、新しい不分明なものに対しては、口には出さねど憤るということがそこに含まれている。諸君はこれまで、うらやましく思うこともできないほど立派な徳を負わされて、あまり美しくて、とがめることのできないような罪をきせられている。わが国の昔の文人は――その当時の物知りであった――まあこんなことを言っている。諸君には着物のどこか見えないところに、毛深いしっぽがあり、そしてしばしば赤ん坊の細切こまぎり料理を食べていると! 否、われわれは諸君に対してもっと悪いことを考えていた。すなわち諸君は、地球上で最も実行不可能な人種と思っていた。というわけは、諸君は決して実行しないことを口では説いているといわれていたから。
서양의 제군들, 우리를 씨앗 삼아 무슨 말이라도 하고 즐기십시오. 아시아는 답례하겠습니다. 아직도 재미있는 씨앗이 될 것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 제군에 대해 지금까지 상상하고 쓴 것을 완전히 알게 된다면. 모두 먼 것을 아름다움으로 보고, 불가사의한 것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감복하고, 새로운 불명확한 것에 대해서는 입 밖에 내지 않아도 분노하는 것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제군은 지금까지 부럽지도 않을 만큼 훌륭한 덕을 입어 너무 아름다워 탓할 수 없는 죄를 지으셨다. 우리 나라의 옛 문인은 -그 당시의 박식했다--뭐 이런 말을 하고 있다.제군에게는 옷이 어딘지 보이지 않는 곳에 털이 많은 꼬리가 있고, 그리고 종종 갓난아기의 잘게 썬 음식을 먹고 있다고! 아니, 우리는 제군에게 더 나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즉 제군은 지구상에서 가장 실행 불가능한 인종이라고 생각했다.그 까닭은 제군은 결코 실행하지 않는 것을 입으로는 말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かくのごとき誤解はわれわれのうちからすみやかに消え去ってゆく。商業上の必要に迫られて欧州の国語が、東洋幾多の港に用いられるようになって来た。アジアの青年は現代的教育を受けるために、西洋の大学に群がってゆく。われわれの洞察力どうさつりょくは、諸君の文化に深く入り込むことはできない。しかし少なくともわれわれは喜んで学ぼうとしている。私の同国人のうちには、諸君の習慣や礼儀作法をあまりに多く取り入れた者がある。こういう人は、こわばったカラや丈たけの高いシルクハットを得ることが、諸君の文明を得ることと心得違いをしていたのである。かかる様子ぶりは、実に哀れむべき嘆かわしいものであるが、ひざまずいて西洋文明に近づこうとする証拠となる。不幸にして、西洋の態度は東洋を理解するに都合が悪い。キリスト教の宣教師は与えるために行き、受けようとはしない。諸君の知識は、もし通りすがりの旅人のあてにならない話に基づくのでなければ、わが文学の貧弱な翻訳に基づいている。ラフカディオ・ハーンの義侠的ぎきょうてきペン、または『インド生活の組織(一)』の著者のそれが、われわれみずからの感情の松明たいまつをもって東洋の闇やみを明るくすることはまれである。
이처럼 많은 오해는 우리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간다.상업상의 필요에 의해 유럽의 국어가, 동양 수많은 항구에 이용되게 되었다. 아시아 청년들은 현대적 교육을 받기 위해 서양의 대학으로 몰려간다. 우리의 통찰력은 제군의 문화를 깊이 파고들 수 없다.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기꺼이 배우려고 한다. 내 동국인 중에는 제군의 습관이나 예의범절을 너무 많이 도입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뻣뻣한 칼라나 빳빳한 실크햇을 얻는 것이, 제군의 문명을 얻는 것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참으로 가엾어야 할 한탄스럽지만, 무릎을 꿇고 서양문명에 접근하려는 증거가 된다. 불행히도 서양의 태도는 동양을 이해하기에 좋지 않다. 기독교 선교사는 주려고 가고 받지 않으려 한다. 여러분의 지식은 지나다니는 나그네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기초하지 않으면 우리 문학의 빈약한 번역에 기초하고 있다. 라후카디오 한의 협객적 의협적 펜, 또는 인도 생활의 조직(一)의 저자가 우리 자신의 감정의 횃불로 동양의 어둠을 밝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私はこんなにあけすけに言って、たぶん茶道についての私自身の無知を表わすであろう。茶道の高雅な精神そのものは、人から期待せられていることだけ言うことを要求する。しかし私は立派な茶人のつもりで書いているのではない。新旧両世界の誤解によって、すでに非常な禍わざわいをこうむっているのであるから、お互いがよく了解することを助けるために、いささかなりとも貢献するに弁解の必要はない。二十世紀の初めに、もしロシアがへりくだって日本をよく了解していたら、血なまぐさい戦争の光景は見ないで済んだであろうに。東洋の問題をさげすんで度外視すれば、なんという恐ろしい結果が人類に及ぶことであろう。ヨーロッパの帝国主義は、黄禍のばかげた叫びをあげることを恥じないが、アジアもまた、白禍の恐るべきをさとるに至るかもしれないということは、わかりかねている。諸君はわれわれを「あまり茶気があり過ぎる」と笑うかもしれないが、われわれはまた西洋の諸君には天性「茶気がない」と思うかもしれないではないか。
나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해서, 아마 다도에 대한 나 자신의 무지를 드러낼 것이다.다도의 고아한 정신 자체는 남에게서 기대하는 것만 말하라고 요구한다.그러나 나는 훌륭한 차인의 생각으로 쓴 것은 아니다. 신구 양세계의 오해로 이미 엄청난 화재를 입었으니 서로가 잘 양해하는 것을 돕기 위해 약간의 기여를 하기에 변명이 필요 없다. 20세기 초에 러시아가 겸손하게 일본을 잘 이해했다면 피비린내 나는 전쟁 광경은 보지 않았을 것이다. 동양의 문제를 폄하하고 도외시한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인류에게 미칠 것인가. 유럽의 제국주의는 황화의 허무맹랑한 외침을 지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지만 아시아 또한 백화의 가공할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제군은 우리를 「너무 장난스럽다」라고 웃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또한 서양의 제군에게는 천성 「장난기가 없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東西両大陸が互いに奇警な批評を飛ばすことはやめにして、東西互いに得る利益によって、よし物がわかって来ないとしても、お互いにやわらかい気持ちになろうではないか。お互いに違った方面に向かって発展して来ているが、しかし互いに長短相補わない道理はない。諸君は心の落ちつきを失ってまで膨張発展を遂げた。われわれは侵略に対しては弱い調和を創造した。諸君は信ずることができますか、東洋はある点で西洋にまさっているということを!
동서 양대륙이 서로 희한한 비평을 쏟아내는 것은 그만두고 동서 양대륙이 얻는 이익에 따라 경물을 알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부드러운 마음이 되리라.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오고 있지만 그러나 서로 장단상보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제군은 마음의 평정을 잃으면서까지 팽창 발전을 이루었다.우리는 침략에 대해서는 약한 조화를 창조했다.제군은 믿을 수 있습니까, 동양은 어떤 점에서 서양보다 낫다는 것을!
不思議にも人情は今までのところ茶碗ちゃわんに東西相合している。茶道は世界的に重んぜられている唯一のアジアの儀式である。白人はわが宗教道徳を嘲笑ちょうしょうした。しかしこの褐色飲料かっしょくいんりょうは躊躇ちゅうちょもなく受け入れてしまった。午後の喫茶は、今や西洋の社会における重要な役をつとめている。盆や茶托ちゃたくの打ち合う微妙な音にも、ねんごろにもてなす婦人の柔らかい絹ずれの音にも、また、クリームや砂糖を勧められたり断わったりする普通の問答にも、茶の崇拝は疑いもなく確立しているということがわかる。渋いか甘いか疑わしい煎茶せんちゃの味は、客を待つ運命に任せてあきらめる。この一事にも東洋精神が強く現われているということがわかる。
이상하게도 인정은 지금까지 찻잔에 동서가 닿아 있다.다도는 세계적으로 중시되고 있는 유일한 아시아 의식이다.백인들은 우리 종교 도덕을 조소했다.그러나 이 갈색 음료는 주저 없이 받아들여 버렸다.오후의 찻집은 지금 서양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쟁반이나 탁자가 부딪치는 미묘한 소리에도, 나이 지긋이 대접하는 부인의 부드러운 비단결 소리에도, 크림이나 설탕을 권하거나 거절하는 보통 문답에도 차의 숭배는 의심의 여지없이 확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떫은지 달지 의심스러운 엽차맛은 손님을 기다리는 운명에 맡기고 포기한다. 이 일에도 동양 정신이 강하게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ヨーロッパにおける茶についての最も古い記事は、アラビヤの旅行者の物語にあると言われていて、八七九年以後広東カントンにおける主要なる歳入の財源は塩と茶の税であったと述べてある。マルコポーロは、シナの市舶司が茶税を勝手に増したために、一二八五年免職になったことを記録している。ヨーロッパ人が、極東についていっそう多く知り始めたのは、実に大発見時代のころである。十六世紀の終わりにオランダ人は、東洋において灌木かんぼくの葉からさわやかな飲料が造られることを報じた。ジオヴァーニ・バティスタ・ラムージオ(一五五九)、エル・アルメイダ(一五七六)、マフェノ(一五八八)、タレイラ(一六一〇)らの旅行者たちもまた茶のことを述べている(二)。一六一〇年に、オランダ東インド会社の船がヨーロッパに初めて茶を輸入した。一六三六年にはフランスに伝わり、一六三八年にはロシアにまで達した。英国は一六五〇年これを喜び迎えて、「かの卓絶せる、かつすべての医者の推奨するシナ飲料、シナ人はこれをチャと呼び、他国民はこれをテイまたはティーと呼ぶ。」と言っていた。
유럽에서 차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사는 아라비아 여행자의 이야기에 있다고 하며, 87년 이후 광동 광둥 광둥의 주요 세입 재원은 소금과 차의 세금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마르코폴로는 시나의 이치하쿠시가 차세를 멋대로 늘리는 바람에 1285년 면직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유럽인이 극동에 대해 한층 더 많이 알기 시작한 것은 실로 대발견시대의 무렵이다.16세기 말에 네덜란드인은 동양에서 관목 관목 잎으로 상쾌한 음료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보도하였다.지오바니 바티스타 라무지오(1559), 엘 알메이다(1556), 마페노(1558), 탈레이라(16010) 등의 여행자들 또한 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2). 1610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배가 유럽에 처음으로 차를 수입했다.1636년에는 프랑스에 전해지고, 1638년에는 러시아에까지 이르렀다.영국은 160년 이를 기쁘게 맞이하여 '그의 탁절함과 동시에 모든 의사가 권장하는 시나 음료, 시나인은 이를 차라고 하며, 타 국민은 이를 티 또는 티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この世のすべてのよい物と同じく、茶の普及もまた反対にあった。ヘンリー・セイヴィル(一六七八)のような異端者は、茶を飲むことを不潔な習慣として口をきわめて非難した。ジョウナス・ハンウェイは言った。(茶の説・一七五六)茶を用いれば男は身のたけ低くなり、みめをそこない、女はその美を失うと。茶の価の高いために(一ポンド約十五シリング)初めは一般の人の消費を許さなかった。「歓待饗応きょうおう用の王室御用品、王侯貴族の贈答用品」として用いられた。しかしこういう不利な立場にあるにもかかわらず、喫茶は、すばらしい勢いで広まって行った。十八世紀前半におけるロンドンのコーヒー店は、実際喫茶店となり、アディソンやスティールのような文士のつどうところとなり、茶を喫しながらかれらは退屈しのぎをしたものである。この飲料はまもなく生活の必要品――課税品――となった。これに関連して、現代の歴史において茶がいかに主要な役を務めているかを思い出す。アメリカ植民地は圧迫を甘んじて受けていたが、ついに、茶の重税に堪えかねて人間の忍耐力も尽きてしまった。アメリカの独立は、ボストン港に茶箱を投じたことに始まる。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과 마찬가지로 차의 보급 또한 반대에 있었다.헨리 세이빌 같은 이단자들은 차 마시는 것을 불결한 습관이라고 극구 비난했다.조나스 한웨이가 말했다. (차의 설, 1756) 차를 마시면 남자는 몸이 작아지고, 눈을 해치고, 여자는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고.차의 값이 비싸기 때문에(파운드 약 15실링) 처음에는 일반인의 소비를 허락하지 않았다.'환대향응 향응용 왕실어용품, 왕후귀족의 선물용품'으로 사용되었다.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찻집은, 훌륭한 기세로 퍼져 나갔다.18세기 전반 런던의 커피점은 실제로 다방이 되었고, 애디슨이나 스틸과 같은 문인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차를 마시며 그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시작했던 것이다.이 음료는 곧 생활의 필요품--과세품--이 되었다.이와 관련해 현대 역사에서 차가 얼마나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아메리카 식민지는 압박을 감수하고 있었지만, 마침내, 차의 중세에 견디지 못하고 인간의 인내력도 바닥나고 말았다.미국의 독립은 보스턴 항에 찻상자를 던진 데서 시작된다.
茶の味には微妙な魅力があって、人はこれに引きつけられないわけにはゆかない、またこれを理想化するようになる。西洋の茶人たちは、茶のかおりとかれらの思想の芳香を混ずるに鈍ではなかった。茶には酒のような傲慢ごうまんなところがない。コーヒーのような自覚もなければ、またココアのような気取った無邪気もない。一七一一年にすでにスペクテイター紙に次のように言っている。「それゆえに私は、この私の考えを、毎朝、茶とバタつきパンに一時間を取っておかれるような、すべての立派な御家庭へ特にお勧めしたいと思います。そして、どうぞこの新聞を、お茶のしたくの一部分として、時間を守って出すようにお命じになることを、せつにお勧めいたします。」サミュエル・ジョンソンはみずからの人物を描いて次のように言っている。「因業いんごうな恥知らずのお茶飲みで、二十年間も食事を薄くするにただこの魔力ある植物の振り出しをもってした。そして茶をもって夕べを楽しみ、茶をもって真夜中を慰め、茶をもって晨あしたを迎えた。」
차의 맛에는 미묘한 매력이 있고, 사람은 여기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이를 이상화하게 된다.서양의 차인들은 차의 향기와 그들의 사상의 방향을 섞는데 둔하지 않았다.차에는 술 같은 오만불손한 데가 없다.커피와 같은 자각도 없고, 코코아와 같은 점잔빼기도 없다.1711년에 이미 스펙테이터지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생각을 매일 아침 차와 버터 바른 빵에 한 시간을 남겨둘 수 있는 훌륭한 가정에 특히 권하고 싶습니다."그리고 아무쪼록 이 신문을 차 준비의 일부분으로 시간을 지켜 내도록 명령하시는 것을 간곡히 권장합니다.] 새뮤얼 존슨은 자신의 인물을 그리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업이 음합한 부끄러움도 모르는 차꾼으로, 20년간이나 식사를 연하게 하는데 단지 이 마력 있는 식물의 출발을 가지고 했다. 그리고 차를 가지고 저녁을 즐기고 차를 가지고 한밤중을 위로하고 차를 가지고 신내일을 맞이하였다."
ほんとうの茶人チャールズ・ラムは、「ひそかに善を行なって偶然にこれが現われることが何よりの愉快である。」というところに茶道の真髄を伝えている。というわけは、茶道は美を見いださんがために美を隠す術であり、現わすことをはばかるようなものをほのめかす術である。この道はおのれに向かって、落ち着いてしかし充分に笑うけだかい奥義である。従ってヒューマーそのものであり、悟りの微笑である。すべて真に茶を解する人はこの意味において茶人と言ってもよかろう。たとえばサッカレー、それからシェイクスピアはもちろん、文芸廃頽期はいたいきの詩人もまた、(と言っても、いずれの時か廃頽期でなかろう)物質主義に対する反抗のあまりいくらか茶道の思想を受け入れた。たぶん今日においてもこの「不完全」を真摯しんしに静観してこそ、東西相会して互いに慰めることができるであろう。
진짜 다인 찰스 램은 은밀히 선을 행해 우연히 이것이 나타나는 것이 무엇보다 유쾌하다는 데 다도의 진수를 전한다.다도는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감추는 술이며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술이다.이 길은 자신을 향해, 침착하게 그러나 충분히 웃는 드높은 오의이다.따라서 휴머 그 자체요, 깨달음의 미소다.모두 진정으로 차를 이해하는 사람은 이런 의미에서 다인(茶人)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예를 들어 축구레이,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물론 문예폐퇴기 시인들은 또한 어느 때건 퇴폐기가 아닐 것이다) 물질주의에 대한 반항으로 얼마간 다도사상을 받아들였다.아마 오늘날에도 이 불완전함을 진지하게 정관해야만 동서상회하고 서로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道教徒はいう、「無始」の始めにおいて「心」と「物」が決死の争闘をした。ついに大日輪黄帝こうていは闇やみと地の邪神祝融しゅくゆうに打ち勝った。その巨人は死苦のあまり頭を天涯てんがいに打ちつけ、硬玉の青天を粉砕した。星はその場所を失い、月は夜の寂寞せきばくたる天空をあてもなくさまようた。失望のあまり黄帝は、遠く広く天の修理者を求めた。捜し求めたかいはあって東方の海から女※(「女+咼」、第3水準1-15-89)じょかという女皇、角つのをいただき竜尾りゅうびをそなえ、火の甲冑かっちゅうをまとって燦然さんぜんたる姿で現われた。その神は不思議な大釜おおがまに五色の虹にじを焼き出し、シナの天を建て直した。しかしながら、また女※(「女+咼」、第3水準1-15-89)は蒼天そうてんにある二個の小隙しょうげきを埋めることを忘れたと言われている。かくのごとくして愛の二元論が始まった。すなわち二個の霊は空間を流転してとどまることを知らず、ついに合して始めて完全な宇宙をなす。人はおのおの希望と平和の天空を新たに建て直さなければならぬ。
도교도는 '무시'의 시작에서 '마음'과 '물건'이 결사적으로 싸웠다.마침내 대일륜 황제는 어둠과 땅의 사신 숙유를 이겼다.그 거인은 죽을 고생을 한 나머지 머리를 천애에 박아 경옥의 날벼락을 분쇄했다.별은 자리를 잃었고 달은 밤의 적막적막한 천공을 정처 없이 방황했다. 실망한 나머지 황제는 멀리 넓게 하늘의 수리원을 구했다.찾은 보람은 있고 동쪽 바다에서 여자※('여자+ 」', 제3수준 1-15-89) 여황, 뿔뿔이 정수리에 용미를 갖추고 불등 가리개를 걸치고 찬연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그 신은 불가사의한 가마솥에 오색 무지개를 새겨 시나 하늘을 다시 세웠다. 그러나 또 여자※(여자+ 」), 제3수준 1-15-89)은 창천에 있는 두 개의 작은 틈 충격을 메우는 것을 잊었다고 한다.이렇듯 사랑의 이원론이 시작되었다.즉 두 개의 영혼은 공간을 유전하여 머무는 것을 모르고, 마침내 합쳐질 때 비로소 완전한 우주를 이룬다. 사람은 각자 희망과 평화의 천공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Each man must rebuild the sky of hope and peace.)
現代の人道の天空は、富と権力を得んと争う莫大ばくだいな努力によって全く粉砕せられている。世は利己、俗悪の闇やみに迷っている。知識は心にやましいことをして得られ、仁は実利のために行なわれている。東西両洋は、立ち騒ぐ海に投げ入れられた二竜りゅうのごとく、人生の宝玉を得ようとすれどそのかいもない。この大荒廃を繕うために再び女※(「女+咼」、第3水準1-15-89)じょかを必要とする。われわれは大権化だいごんげの出現を待つ。まあ、茶でも一口すすろうではないか。明るい午後の日は竹林にはえ、泉水はうれしげな音をたて、松籟しょうらいはわが茶釜ちゃがまに聞こえている。はかないことを夢に見て、美しい取りとめのないことをあれやこれやと考えようではないか。
현대 인도의 천공은 부와 권력을 얻고자 하는 막대한 노력에 의해 완전히 분쇄되고 있다.세상은 이기, 속악의 어둠에 방황하고 있다.지식은 마음의 비열함을 통해 얻어지고, 인은 실리를 위해 이루어진다.동서양양은 출렁이는 바다에 던져진 이룡룡처럼 인생의 보옥을 얻으려 해도 그럴 가치가 없다.이 대황폐를 메우기 위해 다시 여자※('여자+ 」', 제3수준 1-15-89) 조화를 필요로 한다.우리는 대권화의 출현을 기다린다.뭐, 차라도 한 모금 홀짝이지 않은가. 밝은 오후에는 대나무 숲에 파리를 물고, 샘물은 흐뭇한 소리를 내고 있고 송뢰는 우리 찻집마다 들린다. 덧없는 일을 꿈에 꾸고, 아름다운 걷잡을 수 없는 일을 이러쿵저러쿵 생각하랴. (How can you dream of ephemeral things and think of beautiful uncontrollable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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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章 茶の諸流
茶は芸術品であるから、その最もけだかい味を出すには名人を要する。茶にもいろいろある、絵画に傑作と駄作ださくと――概して後者――があると同様に。と言っても、立派な茶をたてるのにこれぞという秘法はない、ティシアン、雪村せっそんのごとき名画を作製するのに何も規則がないと同様に。茶はたてるごとに、それぞれ個性を備え、水と熱に対する特別の親和力を持ち、世々相伝の追憶を伴ない、それ独特の話しぶりがある。真の美は必ず常にここに存するのである。芸術と人生のこの単純な根本的法則を、社会が認めないために、われわれはなんという損失をこうむっていることであろう。宋そうの詩人李仲光りちゅうこうは、世に最も悲しむべきことが三つあると嘆じた、すなわち誤れる教育のために立派な青年をそこなうもの、鑑賞の俗悪なために名画の価値を減ずるもの、手ぎわの悪いために立派なお茶を全く浪費するものこれである。
차는 예술품이기 때문에 그 맛이 가장 강하려면 명인이 필요하다.차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회화에 걸작과 졸작과 대게 후자가 있는 것과 같이. 그렇다고 해도, 훌륭한 차를 끓이는데 이렇다 할 비법은 없다, 티시안, 설촌과 같은 명화를 제작하는데 아무런 규칙이 없는 것과 같이.차는 저마다 개성을 갖추고, 물과 열에 대한 남다른 친화력을 지니며, 세상상전의 추억을 담고, 그 독특한 화법이 있다.진정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여기에 있다.예술과 인생의 이 단순한 근본법칙을 사회가 인정하지 않아 우리는 그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을까.송송의 시인 이중광리중고는 세상에 가장 슬퍼해야 할 일이 세 가지 있다고 탄식한, 즉 잘못된 교육 때문에 훌륭한 청년을 해치는 것, 감상의 속악 때문에 명화의 가치를 줄이는 것, 솜씨가 나빠 훌륭한 차를 전혀 낭비하는 것이다.
芸術と同じく、茶にもその時代と流派とがある。茶の進化は概略三大時期に分けられる、煎茶せんちゃ、抹茶ひきちゃおよび掩茶だしちゃすなわちこれである。われわれ現代人はその最後の流派に属している。これら茶のいろいろな味わい方は、その流行した当時の時代精神を表わしている。と言うのは、人生はわれらの内心の表現であり、知らず知らずの行動はわれわれの内心の絶えざる発露であるから。孔子いわく「人いずくんぞ※(「广+溲のつくり」、第3水準1-84-15)かくさんや、人いずくんぞ※(「广+溲のつくり」、第3水準1-84-15)かくさんや」と。たぶんわれわれは隠すべき偉大なものが非常に少ないからであろう、些事さじに自己を顕あらわすことが多すぎて困る。日々起こる小事件も、哲学、詩歌の高翔こうしょうと同じく人種的理想の評論である。愛好する葡萄酒ぶどうしゅの違いでさえ、ヨーロッパのいろいろな時代や国民のそれぞれの特質を表わしているように、茶の理想もいろいろな情調の東洋文化の特徴を表わしている。煮る団茶、かき回す粉茶、淹だす葉茶はぢゃはそれぞれ、唐とう、宋そう、明みんの気分を明らかに示している。もし、芸術分類に濫用された名称を借りるとすれば、これらをそれぞれ、古典的、ローマン的、および自然主義的な茶の諸流と言えるであろう。
예술과 마찬가지로 차에도 그 시대와 유파가 있다.차의 진화는 대략 3대 시기로 나눌 수 있는, 전차전차, 녹차전차 및 엄차육수차, 즉 이것이다.우리 현대인은 그 마지막 유파에 속해 있다.이러한 차의 다양한 맛은, 그 유행했던 당시의 시대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은, 인생은 우리들의 내심의 표현이며, 알지 못하는 행동은 우리의 내심의 끊임없는 발로이기 때문이다.공자 가라사대('수+수의 조', 제3수준 1-84-15) 확산과 인수가 있도다※('수+수의 조', 제3수준 1-84-15) 확산야라고.아마도 우리는 감출 위대한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일에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너무 많아 곤란하다.하루가 다르게 벌어지는 소사건도 철학, 시가들의 고상고상과 마찬가지로 인종적 이상의 평론이다.애호하는 포도주 포도주의 차이조차 유럽의 여러 시대와 국민 각각의 특성을 드러내듯 차의 이상도 여러 가지 정조의 동양문화의 특징을 드러낸다.끓이는 단차, 휘젓는 분차, 우려내는 엽차는 각각 당통, 송상, 명민의 기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만약 예술 분류에 남용된 명칭을 빌린다면 이를 각각 고전적, 낭만적 및 자연주의적인 차의 제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南シナの産なる茶の木は、ごく早い時代からシナの植物学界および薬物学界に知られていた。古典には、※た[#「木+余」、U+688C、32-9]、※せつ[#「くさかんむり/設」、U+850E、32-9]、※せん[#「くさかんむり/舛」、U+8348、32-9]、※(「木+賈」、第4水準2-15-63)か、茗みょう、というようないろいろな名前で書いてあって、疲労をいやし、精神をさわやかにし、意志を強くし、視力をととのえる効能があるために大いに重んぜられた。ただに内服薬として服用せられたのみならず、しばしばリューマチの痛みを軽減するために、煉薬れんやくとして外用薬にも用いられた。道教徒は、不死の霊薬の重要な成分たることを主張した。仏教徒は、彼らが長時間の黙想中に、睡魔予防剤として広くこれを服用した。
四五世紀のころには、揚子江ようすこう流域住民の愛好飲料となった。このころに至って始めて、現代用いている「茶」という表意文字が造られたのである。これは明らかに、古い「※た[#「木+余」、U+688C、32-15]」の字の俗字であろう。南朝の詩人は「液体硬玉の泡沫ほうまつ」を熱烈に崇拝した跡が見えている。また帝王は、高官の者の勲功に対して上製の茶を贈与したものである。しかし、この時期における茶の飲み方はきわめて原始的なものであった。茶の葉を蒸して臼うすに入れてつき、団子として、米、薑はじかみ、塩、橘皮きっぴ、香料、牛乳等、時には葱ねぎとともに煮るのであった。この習慣は現今チベット人および蒙古もうこ種族の間に行なわれていて、彼らはこれらの混合物で一種の妙なシロップを造るのである。ロシア人がレモンの切れを用いるのは――彼らはシナの隊商宿から茶を飲むことを覚えたのであるが――この古代の茶の飲み方が残っていることを示している。
茶をその粗野な状態から脱して理想の域に達せしめるには、実に唐朝の時代精神を要した。八世紀の中葉に出た陸羽りくう(三)をもって茶道の鼻祖とする。かれは、仏、道、儒教が互いに混淆こんこうせんとしている時代に生まれた。その時代の汎神論的はんしんろんてき象徴主義に促されて、人は特殊の物の中に万有の反映を見るようになった。詩人陸羽は、茶の湯に万有を支配しているものと同一の調和と秩序を認めた。彼はその有名な著作茶経(茶の聖典)において、茶道を組織立てたのである。爾来じらい彼は、シナの茶をひさぐ者の保護神としてあがめられている。
茶経は三巻十章よりなる。彼は第一章において茶の源を論じ、第二章、製茶の器具を論じ、第三章、製茶法を論じている(四)。彼の説によれば、茶の葉の質の最良なものは必ず次のようなものである。
胡人こじんの※(「革+華」、第4水準2-92-10)かわぐつのごとくなる者蹙縮然しゅくしゅくぜんたり(五) ※(「封/牛」、第4水準2-80-24)牛ほうぎゅうの臆むねなる者廉※然れんせんぜん[#「ころもへん+譫のつくり」、U+895C、33-16]たり(六) 浮雲の山をいずる者輸菌然たり(七) 軽※(「風にょう+(火/(火+火))」、第3水準1-94-8)けいえんの水を払う者涵澹然かんせんぜんたり(八) また新治の地なる者暴雨流潦りゅうりょうの経る所に遇あうがごとし(九)
第四章はもっぱら茶器の二十四種を列挙してこれについての記述であって、風炉ふろ(一〇)に始まり、これらのすべての道具を入れる都籃ちゃだんすに終わっている。ここにもわれわれは陸羽の道教象徴主義に対する偏好を認める。これに連関して、シナの製陶術に及ぼした茶の影響を観察してみることもまた興味あることである。シナ磁器は、周知のごとく、その源は硬玉のえも言われぬ色合いを表わそうとの試みに起こり、その結果唐代には、南部の青磁と北部の白磁を生じた。陸羽は青色を茶碗ちゃわんに理想的な色と考えた、青色は茶の緑色を増すが白色は茶を淡紅色にしてまずそうにするから。それは彼が団茶を用いたからであった。その後宋そうの茶人らが粉茶を用いるに至って、彼らは濃藍色のうらんしょくおよび黒褐色こくかっしょくの重い茶碗を好んだ。明人みんじんは淹茶だしちゃを用い、軽い白磁を喜んだ。
第五章において陸羽は茶のたて方について述べている。彼は塩以外の混合物を取り除いている。彼はまた、これまで大いに論ぜられていた水の選択、煮沸の程度の問題についても詳述している。彼の説によると、その水、山水を用うるは上じょう、江水は中、井水は下である。煮沸に三段ある。その沸、魚目(一一)のごとく、すこし声あるを一沸となし、縁辺の涌泉蓮珠ゆうせんれんしゅ(一二)のごとくなるを二沸となし、騰波鼓浪とうはころう(一三)を三沸となしている。団茶はこれをあぶって嬰児えいじの臂ひじのごとく柔らかにし、紙袋を用いてこれをたくわう。初沸にはすなわち、水量に合わせてこれをととのうるに塩味をもってし、第二沸に茶を入れる。第三沸には少量の冷水を※(「金+腹のつくり」、第4水準2-91-15)かまに注ぎ、茶を静めてその「華(一四)」を育やしなう。それからこれを茶碗に注いで飲むのである。これまさに神酒! 晴天爽朗そうろうなるに浮雲鱗然ふうんりんぜんたるあるがごとし(一五)。その沫あわは緑銭の水渭すいいに浮かべるがごとし(一六)。唐の詩人盧同ろどうの歌ったのはこのような立派な茶のことである。
一椀わん喉吻こうふん潤い、二椀孤悶こもんを破る。三椀枯腸をさぐる。惟おもう文字五千巻有り。四椀軽汗を発す。平生不平の事ことごとく毛孔に向かって散ず。五椀肌骨きこつ清し。六椀仙霊せんれいに通ず。七椀吃きつし得ざるに也またただ覚ゆ両腋りょうえき習々清風の生ずるを。蓬莱山ほうらいさんはいずくにかある 玉川子ぎょくせんしこの清風に乗じて帰りなんと欲す(一七)。
茶経の残りの章は、普通の喫茶法の俗悪なこと、有名な茶人の簡単な実録、有名な茶園、あらゆる変わった茶器、および茶道具のさし絵が書いてある。最後の章は不幸にも欠けている。
茶経が世に出て、当時かなりの評判になったに違いない。陸羽は代宗だいそう(七六三―七七九)の援たすくるところとなり、彼の名声はあがって多くの門弟が集まって来た。通人の中には、陸羽のたてた茶と、その弟子でしのたてた茶を飲み分けることができる者もいたということである。ある官人はこの名人のたてた茶の味がわからなかったために、その名を不朽に伝えている。
宋代そうだいには抹茶ひきちゃが流行するようになって茶の第二の流派を生じた。茶の葉は小さな臼うすで挽ひいて細粉とし、その調製品を湯に入れて割り竹製の精巧な小箒こぼうきでまぜるのであった。この新しい方法が起こったために、陸羽が茶の葉の選択法はもちろん、茶のたて方にも多少の変化を起こすに至って、塩は永久にすてられた。宋人の茶に対する熱狂はとどまるところを知らなかった。食道楽の人は互いに競うて新しい変わった方法を発見しようとした、そしてその優劣を決するために定時の競技が行なわれた。徽宗きそう皇帝(一一〇一―一一二四)はあまりに偉い芸術家であって行ないよろしきにかなった王とはいえないが、茶の珍種を得んためにその財宝を惜しげもなく費やした。王みずから茶の二十四種についての論を書いて、そのうち、「白茶」を最も珍しい良質のものであるといって重んじている。
宋人の茶に対する理想は唐人とは異なっていた、ちょうどその人生観が違っていたように。宋人は、先祖が象徴をもって表わそうとした事を写実的に表わそうと努めた。新儒教の心には、宇宙の法則はこの現象世界に映らなかったが、この現象世界がすなわち宇宙の法則そのものであった。永劫えいごうはこれただ瞬時――涅槃ねはんはつねに掌握のうち、不朽は永遠の変化に存すという道教の考えが彼らのあらゆる考え方にしみ込んでいた。興味あるところはその過程にあって行為ではなかった。真に肝要なるは完成することであって完成ではなかった。かくのごとくして人は直ちに天に直面するようになった。新しい意味は次第に生の術にはいって来た。茶は風流な遊びではなくなって、自性了解じしょうりょうげの一つの方法となって来た。王元之おうげんしは茶を称揚して、直言のごとく霊をあふらせ、その爽快そうかいな苦味は善言の余馨よけいを思わせると言った。蘇東坡そとうばは茶の清浄無垢むくな力について、真に有徳の君子のごとく汚けがすことができないと書いている。仏教徒の間では、道教の教義を多く交じえた南方の禅宗が苦心丹精たんせいの茶の儀式を組み立てた。僧らは菩提達磨ぼだいだるまの像の前に集まって、ただ一個の碗わんから聖餐せいさんのようにすこぶる儀式張って茶を飲むのであった。この禅の儀式こそはついに発達して十五世紀における日本の茶の湯となった。
송인의 차에 대한 이상은 당인과 달랐던 바로 그 인생관이 달랐던 것처럼.송인은 선조들이 상징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고자 노력했다.신유교의 마음에는 우주의 법칙은 이 현상세계로 비치지 않았지만, 이 현상세계가 곧 우주의 법칙 그 자체였다.영겁영호는 이 순간순간-열반반은 항상 장악 속에서 불후는 영원한 변화에 존재한다는 도교의 생각이 그들의 온갖 사고방식에 스며들었다.흥미 있는 부분은 그 과정에 있지 행위가 아니었다.참으로 긴요하다는 것은 완성되는 것이지 완성이 아니었다.이리하여 사람은 곧 하늘에 직면하게 되었다.새로운 의미는 점차 삶의 술로 들어왔다.차는 풍류놀이가 아니게 되어 자성양해의 한 방법이 되어 왔다.왕원지는 차를 칭양하여 직언처럼 영혼을 발하게 하고, 그 상쾌한 쓴맛은 선언의 여형(餘形)을 연상시킨다고 했다.소동파 외마는 차의 청정무구한 힘을 진실로 유덕한 군자처럼 더럽힐 수 없다고 적고 있다.불교도 사이에서는 도교의 교의를 많이 섞은 남방의 선종이 고심단정단청 차의식을 조립했다.스님들은 보리달마 보리달마 상 앞에 모여 단 한 개의 완에서 성찬 생산처럼 대단한 의식을 차리고 차를 마셨다.이 선의식이야말로 마침내 발달하여 15세기 일본의 다도가 되었다.
不幸にして十三世紀蒙古もうこ種族の突如として起こるにあい、元朝げんちょうの暴政によってシナはついに劫掠こうりゃく征服せられ、宋代そうだい文化の所産はことごとく破壊せらるるに至った。十七世紀の中葉に国家再興を企ててシナ本国から起こった明朝みんちょうは内紛のために悩まされ、次いで十八世紀、シナはふたたび北狄ほくてき満州人の支配するところとなった。風俗習慣は変じて昔日の面影もなくなった。粉茶は全く忘れられている。明の一訓詁学者くんこがくしゃは宋代典籍の一にあげてある茶筅ちゃせんの形状を思い起こすに苦しんでいる。現今の茶は葉を碗わんに入れて湯に浸して飲むのである。西洋の諸国が古い喫茶法を知らない理由は、ヨーロッパ人は明朝の末期に茶を知ったばかりであるという事実によって説明ができるのである。
後世のシナ人には、茶は美味な飲料ではあるが理想的なものではない。かの国の長い災禍は人生の意義に対する彼の強い興味を奪ってしまった。彼は現代的になった、すなわち老いて夢よりさめた。彼は詩人や古人の永遠の若さと元気を構成する幻影に対する崇高な信念を失ってしまった。彼は折衷家となって宇宙の因襲を静かに信じてこんなものだと悟っている。天をもてあそぶけれども、へりくだって天を征服しまたはこれを崇拝することはしない。彼の葉茶は花のごとき芳香を放ってしばしば驚嘆すべきものがあるが、唐宋とうそう時代の茶の湯のロマンスは彼の茶碗わんには見ることができない。
日本はシナ文化の先蹤せんしょうを追うて来たのであるから、この茶の三時期をことごとく知っている。早くも七二九年聖武しょうむ天皇奈良ならの御殿において百僧に茶を賜うと書物に見えている。茶の葉はたぶん遣唐使によって輸入せられ、当時流行のたて方でたてられたものであろう。八〇一年には僧最澄さいちょう茶の種を携え帰って叡山えいざんにこれを植えた。その後年を経るにしたがって貴族僧侶そうりょの愛好飲料となったのはいうまでもなく、茶園もたくさんできたということである。宋の茶は一一九一年、南方の禅を研究するために渡っていた栄西えいさい禅師の帰国とともにわが国に伝わって来た。彼の持ち帰った新種は首尾よく三か所に植え付けられ、その一か所京都に近い宇治うじは、今なお世にもまれなる名茶産地の名をとどめている。南宋の禅は驚くべき迅速をもって伝播でんぱし、これとともに宋の茶の儀式および茶の理想も広まって行った。十五世紀のころには将軍足利義政あしかがよしまさの奨励するところとなり、茶の湯は全く確立して、独立した世俗のことになった。爾来じらい茶道はわが国に全く動かすべからざるものとなっている。後世のシナの煎茶せんちゃは、十七世紀中葉以後わが国に知られたばかりであるから、比較的最近に使用し始めたものである。日常の使用には煎茶が粉茶に取って代わるに至った、といっても粉茶は今なお茶の中の茶としてその地歩を占めてはいるが。
일본은 시나 문화의 선례를 쫓아 왔으니 이 차의 세 시기를 모두 알고 있다. 벌써 729년 쇼무천황 나라의 어전에서 백승에게 차를 대접한다고 책으로 보인다. 찻잎은 아마도 견당사에 의해 수입되어 당시 유행하던 방식으로 지어진 것일 것이다. 1988년에는 승려 최징징차 씨앗을 가지고 돌아와 에이잔에 이를 심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귀족 승려들의 애호음료가 되었음은 물론 다원도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송나라의 차는 1191년, 남쪽의 선을 연구하기 위해 건너가던 영선사의 귀국과 함께 우리나라에 전해져 왔다.그가 가지고 온 신종은 슈오이쿠 세 곳에 심어졌고 교토에 가까운 우지는 지금껏 세상에 드문 명차 산지의 이름을 남겼다. 남송의 선은 놀라운 신속함으로 전파되었고, 이와 함께 송나라 차의 의식 및 차의 이상도 널리 퍼져 나갔다. 15세기 무렵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장려하는 곳이 되면서 다도는 완전히 확립되어 독립된 세속의 일이 되었다. 그 후 다도는 우리나라에 전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후세의 중국의 센차는 17세기 중엽 이후 일본에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교적 최근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상적인 사용에는 센차가 가루차를 대체하기에 이르렀다지만 가루차는 여전히 차 속의 차로서 그 지반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日本の茶の湯においてこそ始めて茶の理想の極点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一二八一年蒙古もうこ襲来に当たってわが国は首尾よくこれを撃退したために、シナ本国においては蛮族侵入のため不幸に断たれた宋の文化運動をわれわれは続行することができた。茶はわれわれにあっては飲む形式の理想化より以上のものとなった、今や茶は生の術に関する宗教である。茶は純粋と都雅を崇拝すること、すなわち主客協力して、このおりにこの浮世の姿から無上の幸福を作り出す神聖な儀式を行なう口実となった。茶室は寂寞せきばくたる人世の荒野における沃地よくちであった。疲れた旅人はここに会して芸術鑑賞という共同の泉から渇かわきをいやすことができた。茶の湯は、茶、花卉かき、絵画等を主題に仕組まれた即興劇であった。茶室の調子を破る一点の色もなく、物のリズムをそこなうそよとの音もなく、調和を乱す一指の動きもなく、四囲の統一を破る一言も発せず、すべての行動を単純に自然に行なう――こういうのがすなわち茶の湯の目的であった。そしていかにも不思議なことには、それがしばしば成功したのであった。そのすべての背後には微妙な哲理が潜んでいた。茶道は道教の仮りの姿であった。
일본의 다도에서 비로소 차 이상의 극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1281년 몽고 내습에 즈음하여 우리나라는 수미 좋게 이를 격퇴했기 때문에 시나 본국에서는 오랑캐 침입 때문에 불행하게 단절된 송나라의 문화운동을 우리는 속행할 수 있었다. 차는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마시는 형식의 이상화보다 진화된, 차는 생의 술에 관한 종교이다. 차는 순수와 도아를 숭배하는 것, 즉 주객이 협력하여 이 때로 이 속세의 모습에서 무상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신성한 의식을 행하는 구실이 되었다. 다실은 적막적막한 인간세상의 황야 옥지였다. 지친 여행자들은 이곳에 모여 예술감상이라는 공동의 샘에서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찻물은 차, 화훼, 회화 등을 주제로 짜여진 즉흥극이었다. 다실의 가락을 깨뜨리는 한 점 색깔도 없고, 사물의 리듬을 깨뜨리는 소소음도 없으며, 조화를 해치는 한 손가락의 움직임도 없으며, 사위의 통일을 깨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모든 행동을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행한다-이런 것이 곧 다도의 목적이었다.참으로 이상한 일은 그것이 종종 성공했다는 사실이었다.그 모든 뒤에는 미묘한 철리가 도사리고 있었다.다도는 도교의 임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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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章 道教と禅道
茶と禅との関係は世間周知のことである。茶の湯は禅の儀式の発達した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はすでに述べたところであるが、道教の始祖老子の名もまた茶の沿革と密接な関係がある。風俗習慣の起源に関するシナの教科書に、客に茶を供するの礼は老子の高弟関尹かんいん(一八)に始まり、函谷関かんこくかんで「老哲人」にまず一碗わんの金色の仙薬せんやくをささげたと書いてある。道教の徒がつとにこの飲料を用いたことを確証するようないろいろな話の真偽をゆっくりと詮議せんぎするのも価値あることではあるが、それはさておきここでいう道教と禅道とに対する興味は、主としていわゆる茶道として実際に現われている、人生と芸術に関するそれらの思想に存するのである。
遺憾ながら、道教徒と禅の教義とに関して、外国語で充分に表わされているものは今のところ少しもないように思われる。立派な試みはいくつかあったが(一九)。
翻訳は常に叛逆はんぎゃくであって、明朝みんちょうの一作家の言のごとく、よくいったところでただ錦にしきの裏を見るに過ぎぬ。縦横の糸は皆あるが色彩、意匠の精妙は見られない。が、要するに容易に説明のできるところになんの大教理が存しよう。古いにしえの聖人は決してその教えに系統をたてなかった。彼らは逆説をもってこれを述べた、というのは半面の真理を伝えんことを恐れたからである。彼らの始め語るや愚者のごとく終わりに聞く者をして賢ならしめた。老子みずからその奇警な言でいうに、「下士は道を聞きて大いにこれを笑う。笑わざればもって道となすに足らず。」と。「道」は文字どおりの意味は「径路」である。それは the Way(行路)、the Absolute(絶対)、the Law(法則)、Nature(自然)、Supreme Reason(至理)、the Mode(方式)、等いろいろに訳されている。こういう訳も誤りではない。というのは道教徒のこの言葉の用法は、問題にしている話題いかんによって異なっているから。老子みずからこれについて次のように言っている。
物有り混成し、天地に先だって生ず。寂せきたり寥りょうたり。独立して改めず。周行して殆あやうからず。もって天下の母となすべし。吾われその名を知らず。これを字あざなして道という。強しいてこれが名をなして大という。大を逝せいといい、逝を遠といい、遠を反という。
「道」は「径路」というよりもむしろ通路にある。宇宙変遷の精神、すなわち新しい形を生み出そうとして絶えずめぐり来る永遠の成長である。「道」は道教徒の愛する象徴竜りゅうのごとくにすでに反かえり、雲のごとく巻ききたっては解け去る。「道」は大推移とも言うことができよう。主観的に言えば宇宙の気であって、その絶対は相対的なものである。
まず第一に記憶すべきは、道教はその正統の継承者禅道と同じく、南方シナ精神の個人的傾向を表わしていて、儒教という姿で現われている北方シナの社会的思想とは対比的に相違が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中国はその広漠こうばくたることヨーロッパに比すべく、これを貫流する二大水系によって分かたれた固有の特質を備えている。揚子江ようすこうと黄河こうがはそれぞれ地中海とバルト海である。幾世紀の統一を経た今日でも南方シナはその思想、信仰が北方の同胞と異なること、ラテン民族がチュートン民族とこれを異にすると同様である。古代交通が今日よりもなおいっそう困難であった時代、特に封建時代においては思想上のこの差異はことに著しいものであった。一方の美術、詩歌の表わす気分は他方のものと全く異なったものである。老子とその徒および揚子江畔自然詩人の先駆者屈原くつげんの思想は、同時代北方作家の無趣味な道徳思想とは全く相容あいいれない一種の理想主義である。老子は西暦紀元前四世紀の人である。
道教思想の萌芽ほうがは老※(「耳+冉の4画目左右に突き出る」、第4水準2-85-11)ろうたん出現の遠い以前に見られる。シナ古代の記録、特に易経えききょうは老子の思想の先駆をなしている。しかし紀元前十二世紀、周朝しゅうちょうの確立とともに古代シナ文化は隆盛その極に達し、法律慣習が大いに重んぜられたために、個人的思想の発達は長い間阻止せられていた。周崩解して無数の独立国起こるにおよび、始めて自由思想がはなやかに咲き誇ることができた。老子荘子そうじは共に南方人で新派の大主唱者であった。一方孔子はその多くの門弟とともに古来の伝統を保守せんと志したものである。道教を解せんとするには多少儒教の心得がいる。この逆も同じである。
道教でいう絶対は相対であることは、すでに述べたところであるが、倫理学においては道教徒は社会の法律道徳を罵倒ばとうした。というのは彼らにとっては正邪善悪は単なる相対的の言葉であったから。定義は常に制限である。「一定」「不変」は単に成長停止を表わす言葉に過ぎない。屈原くつげんいわく「聖人はよく世とともに推移す。」われらの道徳的規範は社会の過去の必要から生まれたものであるが、社会は依然として旧態にとどまるべきものであろうか。社会の慣習を守るためには、その国に対して個人を絶えず犠牲にすることを免れぬ。教育はその大迷想を続けんがために一種の無知を奨励する。人は真に徳行ある人たることを教えられずして行儀正しくせよと教えられる。われらは恐ろしく自己意識が強いから不道徳を行なう。おのれ自身が悪いと知っているから人を決して許さない。他人に真実を語ることを恐れているから良心をはぐくみ、おのれに真実を語るを恐れてうぬぼれを避難所にする。世の中そのものがばかばかしいのにだれがよくまじめでいられよう! といい、物々交換の精神は至るところに現われている。義だ! 貞節だ! などというが、真善の小売りをして悦えつに入っている販売人を見よ。人はいわゆる宗教さえもあがなうことができる。それは実のところたかの知れた倫理学を花や音楽で清めたもの。教会からその付属物を取り去ってみよ、あとに何が残るか。しかしトラスト(二〇)は不思議なほど繁盛する、値段が途方もなく安いから――天国へ行く切符代の御祈祷ごきとうも、立派な公民の免許状も。めいめい速く能を隠すがよい。もしほんとうに重宝だと世間へ知れたならば、すぐに競売に出されて最高入札者の手に落とされよう。男も女も何ゆえにかほど自己を広告したいのか。奴隷制度の昔に起源する一種の本能に過ぎないのではないか。
이미 도교에서 절대적인 상대성은 말했지만 윤리학에서 도교도는 사회의 법률도덕을 매도하였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정사선악은 상대적인 언어였기 때문이다.정의는 항상 제한적이다.일정 불변은 단지 성장정지를 뜻하는 말일 뿐이다.굴원(굴원굴언) 가로되, '성인은 세상과 더불어 잘 산다.' 우리의 도덕적 규범은 사회의 과거의 필요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사회는 여전히 구태에 머물러야 할 것인가.사회 관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나라에 대해 개인을 끊임없이 희생하는 것을 면할 수 없다.교육은 그 큰 미혹을 계속하기 위해 일종의 무지를 장려한다.사람은 진실로 덕행 있는 사람임을 가르치지 말고 예의 바르게 하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무섭고 자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부도덕을 행한다. 내 자신이 나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남에게 진실을 말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양심을 키우고, 자신에게 진실을 말할까 두려워 자만심을 피난처로 삼는다. 세상 자체가 어리석으면서 누가 더 잘났겠는가! 하며 물물교환의 정신은 도처에 나타나 있다.의다! 정절이다! 라고 하지만, 진선의 소매를 하고 기뻐하고 있는 판매인을 보라. 사람은 이른바 종교조차도 숭상할 수 있다.그것은 사실 매의 잘 알려진 윤리학을 꽃과 음악으로 정화한 것.교회에서 그 부속물을 제거해 보라, 나중에 무엇이 남는가.그러나 트러스트(20)는 신기할 정도로 번창하고,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니까--천국에 가는 표값의 기도 기도 기도 기도도, 훌륭한 공민의 면허장도. 제각기 빨리 노를 감추는 것이 좋다.만약 정말로 유익하다고 세상에 알려지면, 곧바로 경매에 나와 최고 입찰자의 손에 떨어지리라.남자도 여자도 무엇 때문에 자신을 광고하고 싶은가.노예제도의 옛날에 기원한 일종의 본능일 뿐이 아닐까.
道教思想の雄渾ゆうこんなところは、その後続いて起こった種々の運動を支配したその力にも見られるが、それに劣らず、同時代の思想を切り抜けたその力に存している。秦朝しんちょう、といえばシナという名もこれに由来しているかの統一時代であるが、その朝を通じて道教は一活動力であった。もし時の余裕があれば、道教がその時代の思想家、数学家、法律家、兵法家、神秘家、錬金術家および後の江畔自然詩人らに及ぼした影響を注意して見るのも興味あることであろう。また白馬は白く、あるいは堅きがゆえにその実在いかんを疑った実在論者(二一)や、禅門のごとく清浄、絶対について談論した六朝りくちょうの清談家も無視することはできぬ。なかんずく、道教がシナ国民性の形成に寄与したところ、「温なること玉のごとし」という慎み、上品の力を与えた点に対して敬意を表すべきである。シナ歴史は、熱心な道教信者が王侯も隠者も等しく彼らの信条の教えに従って、いろいろな興味深い結果をもたらした実例に満ち満ちている。その物語には必ずその持ち前の楽しみもあり教訓もあろう。逸話、寓言ぐうげん、警句も豊かにあろう。生きていたことがないから死んだこともないあの愉快な皇帝と、求めても言葉をかわすくらいの間がらになりたいものである。列子とともに風に御ぎょして寂静無為じゃくじょうむいを味わうこともできよう、われらみずから風であり、天にも属せず地にも属せず、その中間に住した河上の老人とともに中空にいるものであるから。現今のシナに見る、かの奇怪な、名ばかりの道教においてさえも、他の何道にも見ることのできないたくさんの比喩ひゆを楽しむ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しかしながら、道教がアジア人の生活に対してなしたおもな貢献は美学の領域であった。シナの歴史家は道教のことを常に「処世術」と呼んでいる、というのは道教は現在を――われら自身を取り扱うものであるから。われらこそ神と自然の相会うところ、きのうとあすの分かれるところである。「現在」は移動する「無窮」である。「相対性」の合法な活動範囲である。「相対性」は「安排」を求める。「安排」は「術」である。人生の術はわれらの環境に対して絶えず安排するにある。道教は浮世をこんなものだとあきらめて、儒教徒や仏教徒とは異なって、この憂うき世の中にも美を見いだそうと努めている。宋代そうだいのたとえ話に「三人の酢を味わう者」というのがあるが、三教義の傾向を実に立派に説明している。昔、釈迦牟尼しゃかむに、孔子、老子が人生の象徴酢瓶すがめの前に立って、おのおの指をつけてそれを味わった。実際的な孔子はそれが酸すいと知り、仏陀ぶっだはそれを苦にがいと呼び、老子はそれを甘いと言った。
道教徒は主張した。もしだれもかれも皆が統一を保つようにするならば人生の喜劇はなおいっそうおもしろくすることができると。物のつりあいを保って、おのれの地歩を失わず他人に譲ることが浮世芝居の成功の秘訣ひけつである。われわれはおのれの役を立派に勤めるためには、その芝居全体を知っていなければならぬ。個人を考えるために全体を考え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この事を老子は「虚」という得意の隠喩いんゆで説明している。物の真に肝要なところはただ虚にのみ存すると彼は主張した。たとえば室の本質は、屋根と壁に囲まれた空虚なところに見いだすことができるのであって、屋根や壁そのものにはない。水さしの役に立つところは水を注ぎ込むことのできる空所にあって、その形状や製品のいかんには存しない。虚はすべてのものを含有するから万能である。虚においてのみ運動が可能となる。おのれを虚にして他を自由に入らすことのできる人は、すべての立場を自由に行動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であろう。全体は常に部分を支配す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도교도는 주장했다.만약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통일을 유지한다면 인생의 희극은 더욱 흥미롭게 할 수 있다고.물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지반을 잃지 않고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 뜬금없는 연극의 성공 비결이다.우리들은 우리 역을 훌륭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연극 전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개인을 생각하기 위해 전체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이 일을 노자는 허라는 득의의 은유로 설명하고 있다.사물의 진실로 중요한 것은 오직 허에만 존재한다고 그는 주장했다.가령 방의 본질은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인 공허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 지붕이나 벽 자체에서는 없다.물병에 도움이 되는 곳은 물을 부어 넣을 수 있는 공소에 있어, 그 형상이나 제품의 여관에 존재하지 않는다.허는 모든 것을 함유하므로 만능이다.허에서만 운동이 가능하다.자신을 비우고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들일 수 있는 자는 모든 입장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전체는 항상 부분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道教徒のこういう考え方は、剣道相撲すもうの理論に至るまで、動作のあらゆる理論に非常な影響を及ぼした。日本の自衛術である柔術はその名を道徳経の中の一句に借りている。柔術では無抵抗すなわち虚によって敵の力を出し尽くそうと努め、一方おのれの力は最後の奮闘に勝利を得るために保存しておく。芸術においても同一原理の重要なことが暗示の価値によってわかる。何物かを表わさずにおくところに、見る者はその考えを完成する機会を与えられる。かようにして大傑作は人の心を強くひきつけてついには人が実際にその作品の一部分となるように思われる。虚は美的感情の極致までも入って満たせとばかりに人を待っている。
生の術をきわめた人は、道教徒の言うところの「士」であった。士は生まれると夢の国に入る、ただ死に当たって現実にめざめようとするように。おのが身を世に知れず隠さんために、みずからの聡明そうめいの光を和らげ、「予よとして冬、川を渉わたるがごとく、猶ゆうとして四隣をおそるるがごとく、儼げんとしてそれ客のごとく、渙かんとして冰こおりのまさに釈とけんとするがごとく、敦とんとしてそれ樸ぼくのごとく、曠こうとしてそれ谷のごとく、渾こんとしてそれ濁るがごとし(二二)。」士にとって人生の三宝は、慈、倹、および「あえて天下の先とならず(二三)。」ということであった。
삶의 정수를 누린 사람은 도교도들이 말하는 선비였다.선비는 태어나면 꿈나라에 들어간다. 다만 죽음에 즈음하여 현실에 눈을 뜨려고 하듯이.도끼가 몸을 모르게 감추기 위해 자신의 총명을 누그러뜨리고, '예로써 겨울에 강을 섭건하듯이, 여전히 사린을 두려워하는 듯, 엄엄으로서 그것이 손님인 듯, 환감으로써 빙빙의 바로 석과 겸이라 하듯, 돈문으로서 그것이 박과 같으며, 또한 박과 같이, 공허함.
さて禅に注意を向けてみると、それは道教の教えを強調していることがわかるであろう。禅は梵語ぼんごの禅那ぜんな(Dhyana)から出た名であってその意味は静慮じょうりょである。精進しょうじん静慮することによって、自性了解じしょうりょうげの極致に達することができると禅は主張する。静慮は悟道に入ることのできる六波羅密ろっぱらみつの一つであって、釈迦牟尼しゃかむにはその後年の教えにおいて、特にこの方法を力説し、六則をその高弟迦葉かしょうに伝えたと禅宗徒は確言している。かれらの言い伝えによれば、禅の始祖迦葉はその奥義を阿難陀あなんだに伝え、阿難陀から順次に祖師相伝えてついに第二十八祖菩提達磨ぼだいだるまに至った。菩提達磨は六世紀の前半に北シナに渡ってシナ禅宗の第一祖となった。これらの祖師やその教理の歴史については不確実なところが多い。禅を哲学的に見れば昔の禅学は一方において那伽閼剌樹那ながあらじゅな(二四)のインド否定論に似ており、また他方においては商羯羅阿闍梨しゃんからあじゃりの組み立てた無明むみょう観(二六)に似たところがあるように思われる。今日われらの知っているとおりの禅の教理は南方禅(南方シナに勢力があったことからそういわれる)の開山シナの第六祖慧能えのう(六三七―七一三)が始めて説いたに違いない。慧能の後、ほどなく馬祖ばそ大師(七八八滅)これを継いで禅を中国人の生活における一活動勢力に作りあげた。馬祖の弟子でし百丈ひゃくじょう(七一九―八一四)は禅宗叢林そうりんを開創し、禅林清規ぜんりんしんぎを制定した。馬祖の時代以後の禅宗の問答を見ると、揚子江岸ようすこうがん精神の影響をこうむって、昔のインド理想主義とはきわ立って違ったシナ固有の考え方を増していることがわかる。いかほど宗派的精神の誇りが強くて、そうではないといったところで、南方禅が老子や清談家の教えに似ていることを感じ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道徳経の中にすでに精神集中の重要なことや気息を適当に調節することを述べている――これは禅定に入るに必要欠くべからざる要件である。道徳経の良注釈の或あるものは禅学者によって書かれたものである。
禅道は道教と同じく相対を崇拝するものである。ある禅師は禅を定義して南天に北極星を識しるの術といっている。真理は反対なものを会得することによってのみ達せられる。さらに禅道は道教と同じく個性主義を強く唱道した。われらみずからの精神の働きに関係しないものはいっさい実在ではない。六祖慧能えのうかつて二僧が風に翻る塔上の幡ばんを見て対論するのを見た。「一はいわく幡動くと。一はいわく風動くと。」しかし、慧能は彼らに説明して言った、これ風の動くにあらずまた幡ばんの動くにもあらずただ彼らみずからの心中のある物の動くなりと。百丈が一人の弟子と森の中を歩いていると一匹の兎うさぎが彼らの近寄ったのを知って疾走し去った。「なぜ兎はおまえから逃げ去ったのか。」と百丈が尋ねると、「私を恐れてでしょう。」と答えた。祖師は言った、「そうではない、おまえに残忍性があるからだ。」と。この対話は道教の徒荘子の話を思い起させる。ある日荘子友と濠梁ごうりょうのほとりに遊んだ。荘子いわく「※(「條」の「木」に代えて「黨-尚」、第3水準1-14-46)魚じょうぎょいで遊びて従容しょうようたり。これ魚の楽しむなり。」と。その友彼に答えていわく「子しは魚にあらず。いずくんぞ魚の楽しきを知らん。」と。「子は我れにあらず、いずくんぞわが魚の楽しきを知らざるを知らん。」と荘子は答えた。
禅は正統の仏道の教えとしばしば相反した、ちょうど道教が儒教と相反したように。禅門の徒の先験的洞察どうさつに対しては言語はただ思想の妨害となるものであった。仏典のあらん限りの力をもってしてもただ個人的思索の注釈に過ぎないのである。禅門の徒は事物の内面的精神と直接交通しようと志し、その外面的の付属物はただ真理に到達する阻害と見なした。この絶対を愛する精神こそは禅門の徒をして古典仏教派の精巧な彩色画よりも墨絵の略画を選ばしめるに至ったのである。禅学徒の中には、偶像や象徴によらないでおのれの中に仏陀ぶっだを認めようと努めた結果、偶像破壊主義者になったものさえある。丹霞和尚たんかおしょうは大寒の日に木仏を取ってこれを焚たいたという話がある。かたわらにいた人は非常に恐れて言った、「なんとまあもったいない!」と。和尚は落ち着き払って答えた、「わしは仏様を焼いて、お前さんたちのありがたがっているお舎利しゃりを取るのだ。」「木仏の頭からお舎利が出てたまるものですか。」とつっけんどんな受け答えに、丹霞和尚がこたえて言った、「もし、お舎利の出ない仏様なら、何ももったいないことはないではないか。」そう言って振り向いてたき火にからだをあたためた。
禅の東洋思想に対する特殊な寄与は、この現世の事をも後生ごしょうのことと同じように重く認めたことである。禅の主張によれば、事物の大相対性から見れば大と小との区別はなく、一原子の中にも大宇宙と等しい可能性がある。極致を求めんとする者はおのれみずからの生活の中に霊光の反映を発見しなければならぬ。禅林の組織はこういう見地から非常に意味深いものであった。祖師を除いて禅僧はことごとく禅林の世話に関する何か特別の仕事を課せられた。そして妙なことには新参者には比較的軽い務めを与えられたが、非常に立派な修行を積んだ僧には比較的うるさい下賤げせんな仕事が課せられた。こういう勤めが禅修行の一部をなしたものであって、いかなる些細ささいな行動も絶対完全に行な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あった。こういうふうにして、庭の草をむしりながらでも、蕪菁かぶらを切りながらでも、またはお茶をくみながらでも、いくつもいくつも重要な論議が次から次へと行なわれた。茶道いっさいの理想は、人生の些事さじの中にでも偉大を考えるというこの禅の考えから出たものである。道教は審美的理想の基礎を与え禅はこれを実際的なものと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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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章 茶室
石造や煉瓦れんが造り建築の伝統によって育てられた欧州建築家の目には、木材や竹を用いるわが日本式建築法は建築としての部類に入れる価値はほとんどないように思われる。ある相当立派な西洋建築の研究家がわが国の大社寺の実に完備していることを認め、これを称揚したのは全くほんの最近のことである。わが国で一流の建築についてこういう事情であるから、西洋とは全く趣を異にする茶室の微妙な美しさ、その建築の原理および装飾が門外漢に充分にわかろうとはまず予期できないことである。
茶室(数寄屋すきや)は単なる小家で、それ以外のものをてらうものではない、いわゆる茅屋ぼうおくに過ぎない。数寄屋の原義は「好き家」である。後になっていろいろな宗匠が茶室に対するそれぞれの考えに従っていろいろな漢字を置き換えた、そして数寄屋という語は「空すき家」または「数奇家」の意味にもなる。それは詩趣を宿すための仮りの住み家であるからには「好き家」である。さしあたって、ある美的必要を満たすためにおく物のほかは、いっさいの装飾を欠くからには「空すき家」である。それは「不完全崇拝」にささげられ、故意に何かを仕上げずにおいて、想像の働きにこれを完成させるからには「数奇家」である。茶道の理想は十六世紀以来わが建築術に非常な影響を及ぼしたので、今日、日本の普通の家屋の内部はその装飾の配合が極端に簡素なため、外国人にはほとんど没趣味なものに見える。
始めて独立した茶室を建てたのは千宗易せんのそうえき、すなわち後に利休りきゅうという名で普通に知られている大宗匠で、彼は十六世紀太閤秀吉たいこうひでよしの愛顧をこうむり、茶の湯の儀式を定めてこれを完成の域に達せしめた。茶室の広さはその以前に十五世紀の有名な宗匠紹鴎じょうおうによって定められていた。初期の茶室はただ普通の客間の一部分を茶の会のために屏風びょうぶで仕切ったものであった。その仕切った部分は「かこい」と呼ばれた。その名は、家の中に作られていて独立した建物ではない茶室へ今もなお用いられている。数寄屋は、「グレイスの神よりは多く、ミューズの神よりは少ない。」という句を思い出させるような五人しかはいれないしくみの茶室本部と、茶器を持ち込む前に洗ってそろえておく控えの間(水屋みずや)と、客が茶室へはいれと呼ばれるまで待っている玄関(待合まちあい)と、待合と茶室を連絡している庭の小道(露地ろじ)とから成っている。茶室は見たところなんの印象も与えない。それは日本のいちばん狭い家よりも狭い。それにその建築に用いられている材料は、清貧を思わせるようにできている。しかしこれはすべて深遠な芸術的思慮の結果であって、細部に至るまで、立派な宮殿寺院を建てるに費やす以上の周到な注意をもって細工が施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よい茶室は普通の邸宅以上に費用がかかる、というのはその細工はもちろんその材料の選択に多大の注意と綿密を要するから。実際茶人に用いられる大工は、職人の中でも特殊な、非常に立派な部類を成している。彼らの仕事は漆器家具匠の仕事にも劣らぬ精巧なものであるから。
茶室はただに西洋のいずれの建築物とも異なるのみならず、日本そのものの古代建築とも著しい対照をなしている。わが国古代の立派な建築物は宗教に関係あるものもないものも、その大きさだけから言っても侮りがたいものであった。数世紀の間不幸な火災を免れて来たわずかの建築物は、今なおその装飾の壮大華麗によって、人に畏敬いけいの念をおこさせる力がある。直径二尺から三尺、高さ三十尺から四十尺の巨柱は、複雑な腕木うでぎの網状細工によって、斜めの瓦屋根かわらやねの重みにうなっている巨大な梁はりをささえていた。建築の材料や方法は、火に対しては弱いけれども地震には強いということがわかった。そしてわが国の気候によく適していた。法隆寺ほうりゅうじの金堂こんどうや薬師寺やくしじの塔は木造建築の耐久性を示す注目すべき実例である。これらの建物は十二世紀の間事実上そのまま保全せられていた。古い宮殿や寺の内部は惜しげもなく装飾を施されていた。十世紀にできた宇治うじの鳳凰堂ほうおうどうには今もなお昔の壁画彫刻の遺物はもとより、丹精たんせいをこらした天蓋てんがい、金を蒔まき鏡や真珠をちりばめた廟蓋びょうがいを見ることができる。後になって、日光や京都二条の城においては、アラビア式またはムーア式華麗をつくした力作にも等しいような色彩の美や精巧をきわめたたくさんの装飾のために、建築構造の美が犠牲にせられているのを見る。
茶室の簡素清浄は禅院の競いからおこったものである。禅院は他の宗派のものと異なってただ僧の住所として作られている。その会堂は礼拝巡礼の場所ではなくて、禅修行者が会合して討論し黙想する道場である。その室は、中央の壁の凹所おうしょ、仏壇の後ろに禅宗の開祖菩提達磨ぼだいだるまの像か、または祖師迦葉かしょうと阿難陀あなんだをしたがえた釈迦牟尼しゃかむにの像があるのを除いてはなんの飾りもない。仏壇には、これら聖者の禅に対する貢献を記念して香華こうげがささげてある。茶の湯の基をなしたものはほかではない、菩提達磨の像の前で同じ碗わんから次々に茶を喫のむという禅僧たちの始めた儀式であったということはすでに述べたところである。が、さらにここに付言してよかろうと思われることは禅院の仏壇は、床の間――絵や花を置いて客を教化する日本間の上座――の原型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
わが国の偉い茶人は皆禅を修めた人であった。そして禅の精神を現実生活の中へ入れようと企てた。こういうわけで茶室は茶の湯の他の設備と同様に禅の教義を多く反映している。正統の茶室の広さは四畳半で維摩ゆいまの経文きょうもんの一節によって定められている。その興味ある著作において、馥柯羅摩訶秩多びからまかちった(二七)は文珠師利菩薩もんじゅしりぼさつと八万四千の仏陀ぶっだの弟子でしをこの狭い室に迎えている。これすなわち真に覚さとった者には一切皆空いっさいかいくうという理論に基づくたとえ話である。さらに待合から茶室に通ずる露地は黙想の第一階段、すなわち自己照明に達する通路を意味していた。露地は外界との関係を断って、茶室そのものにおいて美的趣味を充分に味わう助けとなるように、新しい感情を起こすためのものであった。この庭径を踏んだことのある人は、常緑樹の薄明に、下には松葉の散りしくところを、調和ある不ぞろいな庭石の上を渡って、苔こけむした石燈籠いしどうろうのかたわらを過ぎる時、わが心のいかに高められたかを必ず思い出すであろう。たとえ都市のまん中にいてもなお、あたかも文明の雑踏や塵ちりを離れた森の中にいるような感がする。こういう静寂純潔の効果を生ぜしめた茶人の巧みは実に偉いものであった。露地を通り過ぎる時に起こすべき感情の性質は茶人によっていろいろ違っていた。利休のような人たちは全くの静寂を目的とし、露地を作るの奥意は次の古歌の中にこもっていると主張した(二八)。
見渡せば花ももみじもなかりけり
浦のとまやの秋の夕暮れ(二九)
その他小堀遠州こぼりえんしゅうのような人々はまた別の効果を求めた。遠州は庭径の着想は次の句の中にあると言った。
夕月夜ゆうづくよ海すこしある木この間まかな(三〇)
彼の意味を推測するのは難くない。彼は、影のような過去の夢の中になおさまよいながらも、やわらかい霊光の無我の境地に浸って、渺茫びょうぼうたるかなたに横たわる自由をあこがれる新たに目ざめた心境をおこそうと思った。
こういう心持ちで客は黙々としてその聖堂に近づいて行く。そしてもし武士ならばその剣を軒下の刀架とうかにかけておく、茶室は至極平和の家であるから。それから客は低くかがんで、高さ三尺ぐらいの狭い入り口〔にじり口〕からにじってはいる。この動作は、身貴たっときも卑しきも同様にすべての客に負わされる義務であって、人に謙譲を教え込むためのものであった。席次は待合で休んでいる間に定まっているので、客は一人ずつ静かにはいってその席につき、まず床の間の絵または生花に敬意を表する。主人は、客が皆着席して部屋へやが静まりきり、茶釜ちゃがまにたぎる湯の音を除いては、何一つ静けさを破るものもないようになって、始めてはいってくる。茶釜は美しい音をたてて鳴る。特殊のメロディーを出すように茶釜の底に鉄片が並べてあるから。これを聞けば、雲に包まれた滝の響きか岩に砕くる遠海の音か竹林を払う雨風か、それともどこか遠き丘の上の松籟しょうらいかとも思われる。
日中でも室内の光線は和らげられている。傾斜した屋根のある低いひさしは日光を少ししか入れないから。天井から床に至るまですべての物が落ち着いた色合いである。客みずからも注意して目立たぬ着物を選んでいる。古めかしい和らかさがすべての物に行き渡っている。ただ清浄無垢むくな白い新しい茶筅ちゃせんと麻ふきんが著しい対比をなしているのを除いては、新しく得られたらしい物はすべて厳禁せられている。茶室や茶道具がいかに色あせて見えてもすべての物が全く清潔である。部屋へやの最も暗いすみにさえ塵ちり一本も見られない。もしあるようならばその主人は茶人とはいわれないのである。茶人に第一必要な条件の一は掃き、ふき清め、洗うことに関する知識である、払い清めるには術を要するから。金属細工はオランダの主婦のように無遠慮にやっきとなってはたいてはならない。花瓶かびんからしたたる水はぬぐい去るを要しない、それは露を連想させ、涼味を覚えさせるから。
これに関連して、茶人たちのいだいていた清潔という考えをよく説明している利休についての話がある。利休はその子紹安じょうあんが露地を掃除そうじし水をまくのを見ていた。紹安が掃除を終えた時利休は「まだ充分でない。」と言ってもう一度しなおすように命じた。いやいやながら一時間もかかってからむすこは父に向かって言った、「おとうさん、もう何も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庭石は三度洗い石燈籠いしどうろうや庭木にはよく水をまき蘚苔こけは生き生きした緑色に輝いています。地面には小枝一本も木の葉一枚もありません。」「ばか者、露地の掃除はそんなふうにするものではない。」と言ってその茶人はしかった。こう言って利休は庭におり立ち一樹を揺すって、庭一面に秋の錦にしきを片々と黄金、紅の木の葉を散りしかせた。利休の求めたものは清潔のみではなくて美と自然とであった。
「好き家」という名はある個人の芸術的要求にかなうように作られた建物という意味を含んでいる。茶室は茶人のために作ったものであって茶人は茶室のためのものではない。それは子孫のために作ったのではないから暫定的である。人は各自独立の家を持つべきであるという考えは日本民族古来の習慣に基づいたもので、神道の迷信的習慣の定めによれば、いずれの家もその家長が死ぬと引き払うことになっている。この習慣はたぶんあるわからない衛生上の理由もあってのことかもしれない。また別に昔の習慣として新婚の夫婦には新築の家を与えるということもあった。こういう習慣のために古代の皇居は非常にしばしば次から次へとうつされた。伊勢いせの大廟たいびょうを二十年ごとに再築するのは古いにしえの儀式の今日なお行なわれている一例である。こういう習慣を守るのは組み立て取りこわしの容易なわが国の木造建築のようなある建築様式においてのみ可能であった。煉瓦れんが石材を用いるやや永続的な様式は移動できないようにしたであろう、奈良朝ならちょう以後シナの鞏固きょうこな重々しい木造建築を採用するに及んで実際移動不可能になったように。
'좋아하는 집'이라는 이름은 한 개인의 예술적 요구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진 건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다실은 다인을 위해 만든 것이지 다인은 다실을 위한 것이 아니다.그것은 후손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잠정적이다.사람은 각자 독립적인 집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일본민족의 오랜 습관에 근거한 것으로, 신도의 미신적 습관에 따르면 어느 집이나 그 가장이 죽으면 물러나게 되어 있다.이 습관은 아마 어떤 알 수 없는 위생상의 이유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신혼부부에게는 새로 지은 집을 따로 마련해주기도 했다.이런 습관 때문에 고대의 황궁은 아주 자주 옮겨졌다.이세(伊勢)의 대묘(大廟)를 20년마다 개축하는 것은 옛 의식의 오늘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한 예이다.이런 습관을 지키는 것은 조립이 헐리기 쉬운 일본의 목조건축과 같은 어떤 건축양식에서만 가능하다.벽돌 석재를 이용하는 다소 영속적인 양식은 이동할 수 없게 했을 것이다, 나라조 나라조 이후 시나의 공고 굳건한 목조건물을 채용하는데 있어 실제 이동이 불가능하게 된 것처럼.
しかしながら十五世紀禅の個性主義が勢力を得るにつれて、その古い考えは茶室に連関して考えられ、これにある深い意味がしみこんで来た。禅は仏教の有為転変ういてんぺんの説と精神が物質を支配すべきであるというその要求によって家をば身を入れるただ仮りの宿と認めた。その身とてもただ荒野にたてた仮りの小屋、あたりにはえた草を結んだか弱い雨露しのぎ――この草の結びが解ける時はまたもとの野原に立ちかえる。茶室において草ぶきの屋根、細い柱の弱々しさ、竹のささえの軽かろやかさ、さてはありふれた材料を用いて一見いかにも無頓着むとんじゃくらしいところにも世の無常が感ぜられる。常住は、ただこの単純な四囲の事物の中に宿されていて風流の微光で物を美化する精神に存している。
茶室はある個人的趣味に適するように建てらるべきだということは、芸術における最も重要な原理を実行することである。芸術が充分に味わわれるためにはその同時代の生活に合っていなければならぬ。それは後世の要求を無視せよというのではなくて、現在をなおいっそう楽しむことを努むべきだというのである。また過去の創作物を無視せよというのではなくて、それをわれらの自覚の中に同化せよというのである。伝統や型式に屈従することは、建築に個性の表われるのを妨げるものである。現在日本に見るような洋式建築の無分別な模倣を見てはただ涙を注ぐほかはない。われわれは不思議に思う、最も進歩的な西洋諸国の間に何ゆえに建築がかくも斬新ざんしんを欠いているのか、かくも古くさい様式の反復に満ちているのかと。たぶん今芸術の民本主義の時代を経過しつつ、一方にある君主らしい支配者が出現して新たな王朝をおこすのを待っているのであろう。願わくは古人を憬慕けいぼすることはいっそうせつに、かれらに模倣することはますます少なからんことを! ギリシャ国民の偉大であったのは決して古物に求めなかったからであると伝えられている。
「空すき家」という言葉は道教の万物包涵ほうかんの説を伝えるほかに、装飾精神の変化を絶えず必要とする考えを含んでいる。茶室はただ暫時美的感情を満足さすためにおかれる物を除いては、全く空虚である。何か特殊な美術品を臨時に持ち込む、そしてその他の物はすべて主調の美しさを増すように選択配合せられるのである。人はいろいろな音楽を同時に聞くことはできぬ、美しいものの真の理解はただある中心点に注意を集中することによってのみできるのであるから。かくのごとくわが茶室の装飾法は、現今西洋に行なわれている装飾法、すなわち屋内がしばしば博物館に変わっているような装飾法とは趣を異にしていることがわかるだろう。装飾の単純、装飾法のしばしば変化するのになれている日本人の目には、絵画、彫刻、骨董品こっとうひんのおびただしい陳列で永久的に満たされている西洋の屋内は、単に俗な富を誇示しているに過ぎない感を与える。一個の傑作品でも絶えずながめて楽しむには多大の鑑賞力を要する。してみれば欧米の家庭にしばしば見るような色彩形状の混沌こんとんたる間に毎日毎日生きている人たちの風雅な心はさぞかし際限もなく深いものであろう。
빈집이란 말은 도교의 만물 포함 방한 설을 전하는 것 외에 장식정신의 변화를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생각을 담고 있다.다실은 단지 잠시 미적 감정을 만족시키기 위해 놓여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공허하다.무언가 특수한 미술품을 임시로 들여오거나 그 외의 물건들은 모두 주조의 아름다움을 더하도록 선택 배합된다.사람은 여러 음악을 동시에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의 진정한 이해는 오직 어떤 중심점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이처럼 우리 다실의 장식법은 오늘날 서양에서 행해지고 있는 장식법, 즉 실내가 종종 박물관으로 변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장식법과는 색다른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장식의 단순, 장식법이 자주 변화하는 데 익숙한 일본인들의 눈에는 회화 조각 골동품들의 엄청난 진열로 영구히 채워진 서양의 실내는 그저 속된 부를 과시하는 데 불과한 느낌을 준다.한 편의 걸작품도 끊임없이 바라보고 즐기는 데는 많은 감상력이 필요하다.그러고 보면 서구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채 형상의 혼돈 동안 매일매일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아한 마음은 필시 지극할 것이다.
「数寄屋」はわが装飾法の他の方面を連想させる。日本の美術品が均斉を欠いていることは西洋批評家のしばしば述べたところである。これもまた禅を通じて道教の理想の現われた結果である。儒教の根深い両元主義も、北方仏教の三尊崇拝も、決して均斉の表現に反対したものではなかった。実際、もしシナ古代の青銅器具または唐代および奈良なら時代の宗教的美術品を研究してみれば均斉を得るために不断の努力をしたことが認められるであろう。わが国の古典的屋内装飾はその配合が全く均斉を保っていた。しかしながら道教や禅の「完全」という概念は別のものであった。彼らの哲学の動的な性質は完全そのものよりも、完全を求むる手続きに重きをおいた。真の美はただ「不完全」を心の中に完成する人によってのみ見いだされる。人生と芸術の力強いところはその発達の可能性に存した。茶室においては、自己に関連して心の中に全効果を完成することが客各自に任されている。禅の考え方が世間一般の思考形式となって以来、極東の美術は均斉ということは完成を表わすのみならず重複を表わすものとしてことさらに避けていた。意匠の均等は想像の清新を全く破壊するものと考えられていた。このゆえに人物よりも山水花鳥を画題として好んで用いるようになった。人物は見る人みずからの姿として現われているのであるから。実際われわれは往々あまりに自己をあらわし過ぎて困る、そしてわれわれは虚栄心があるにもかかわらず自愛さえも単調になりがちである。茶室においては重複の恐れが絶えずある。室の装飾に用いる種々な物は色彩意匠の重複しないように選ばなければならぬ。生花があれば草花の絵は許されぬ。丸い釜かまを用いれば水さしは角張っていなければならぬ。黒釉薬くろうわぐすりの茶わんは黒塗りの茶入れとともに用いてはならぬ。香炉や花瓶かびんを床の間にすえるにも、その場所を二等分してはならないから、ちょうどそのまん中に置かぬよう注意せねばならぬ。少しでも室内の単調の気味を破るために、床の間の柱は他の柱とは異なった材木を用いねばならぬ。
스키야는 우리 장식법의 다른 방면을 연상시킨다.일본 미술품의 균형이 부족하다는 것은 서양비평가들이 자주 말한 바 있다.이 또한 선을 통해 도교의 이상이 나타난 결과였다.유교의 뿌리 깊은 양원주의도, 북방불교의 삼존숭배도 결코 균제의 표현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사실 만약 중국 고대의 청동기구 혹은 당대 및 나라나라 시대의 종교적 미술품을 연구해 본다면 균형을 얻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음이 인정될 것이다.우리나라의 고전적인 실내장식은 그 배합이 완전히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그러나 도교나 선의 '완전'이란 개념은 별개였다.그들 철학의 동적 성질은 완전 그 자체보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절차에 무게를 두었다.진정한 아름다움은 오직 '불완전'을 마음속에 완성하는 사람에 의해서만 발견된다.삶과 예술의 힘찬 부분은 그 발달 가능성에 있었다.다실에서는 자기와 관련하여 마음 속에 모든 효과를 완성하는 것이 손님 각자에게 맡겨지고 있다.선의 사고방식이 세간의 일반적 사고형식이 된 이래 극동의 미술은 균제라는 것은 완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중복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유달리 피하고 있었다.장인의 균등은 상상의 청신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이 때문에 인물보다는 산수화조를 화제로 즐겨 사용하게 되었다.인물은 보는 사람 스스로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니까.사실 우리는 종종 너무 자기를 드러내서 곤란하고, 우리는 허영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애마저 단조롭게 되곤 한다.다실에서는 중복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실의 장식에 사용하는 여러 가지 물건은 색채의장이 중복되지 않도록 선택해야 한다.생화가 있으면 화초의 그림은 허용되지 않는다.둥근 가마솥을 이용하면 주전자가 각이 져야 한다.흑유약인 흑유약 찻잔은 검은색으로 칠한 차통과 함께 사용해서는 안 된다.향로나 꽃병을 도코노마에 놓는데도 자리를 이등분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꼭 그 한가운데 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조금이라도 실내의 단조로운 기미를 깨기 위해 도코노마의 기둥은 다른 기둥과는 다른 재목을 사용해야 한다.
この点においてもまた日本の室内装飾法は西洋の壁炉やその他の場所に物が均等に並べてある装飾法と異なっている。西洋の家ではわれわれから見れば無用の重複と思われるものにしばしば出くわすことがある。背後からその人の全身像がじっとこちらを見ている人と対談するのはつらいことである。肖像の人か、語っている人か、いずれが真のその人であろうかといぶかり、その一方はにせ物に違いないという妙な確信をいだいてくる。お祝いの饗宴きょうえんに連なりながら食堂の壁に描かれたたくさんのものをつくづくながめて、ひそかに消化の傷害をおこしたことは幾度も幾度もある。何ゆえにこのような遊猟の獲物を描いたものや魚類果物くだものの丹精たんせいこめた彫刻をおくのであるか。何ゆえに家伝の金銀食器を取り出して、かつてそれを用いて食事をし今はなき人を思い出させるのであるか。
이 점에 있어서도 일본의 실내장식법은 서양의 벽로나 그 밖의 장소에 물건이 균등하게 늘어놓은 장식법과 다르다.서양의 집에서는 우리가 보기에는 무용지물이라고 생각되는 것과 종종 마주치곤 한다.등뒤에서 그 사람의 전신상이 가만히 이쪽을 보고 있는 사람과 대담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초상 속의 사람인지, 말하는 사람인지, 어느 쪽이 진정한 그 사람인지 의심하게 되고, 그 한쪽은 가짜임에 틀림없다는 묘한 확신을 갖게 된다.잔치의 향연에 참석하면서 식당 벽에 그려진 많은 것들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몰래 소화상해를 일으킨 적은 여러 번 있다.어떻게 이런 유렵 사냥감을 그린 것이나 어류 과일 과일 등 정성어린 조각을 둘 수 있겠는가.어째서 가전 금은식기를 꺼내, 일찍이 그것을 이용해 식사를 해 지금은 죽은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것일까.
茶室は簡素にして俗を離れているから真に外界のわずらわしさを遠ざかった聖堂である。ただ茶室においてのみ人は落ち着いて美の崇拝に身をささげることができる。十六世紀日本の改造統一にあずかった政治家やたけき武士もののふにとって茶室はありがたい休養所となった。十七世紀徳川治世のきびしい儀式固守主義の発達した後は、茶室は芸術的精神と自由に交通する唯一の機会を与えてくれた。偉大なる芸術品の前には大名も武士も平民も差別はなかった。今日は工業主義のために真に風流を楽しむことは世界至るところますます困難になって行く。われわれは今までよりもいっそう茶室を必要とするのではなかろうか。
다실은 간소하게 속세를 떠났기 때문에 외계의 번거로움을 진정으로 멀리한 성당이다.다만 다실에서 마시는 사람은 차분히 미를 숭배할 수 있다.16세기 일본의 개조통일에 참여했던 정치가와 다케키 무사(武木武士)들에게 다실은 고마운 휴양소가 되었다.17세기 도쿠가와 치세의 엄격한 의식 고수주의가 발달한 후, 다실은 예술적 정신과 자유롭게 교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주었다.위대한 예술품 앞에는 다이묘도 무사도 평민도 차별이 없었다.오늘날 공업주의 때문에 진정으로 풍류를 즐기기는 세계 도처에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우리는 지금까지보다 더 다실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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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章 芸術鑑賞
諸君は「琴ならし」という道教徒の物語を聞いたことがありますか。
大昔、竜門りゅうもんの峡谷きょうこくに、これぞ真の森の王と思われる古桐ふるぎりがあった。頭はもたげて星と語り、根は深く地中におろして、その青銅色のとぐろ巻きは、地下に眠る銀竜ぎんりゅうのそれとからまっていた。ところが、ある偉大な妖術者ようじゅつしゃがこの木を切って不思議な琴をこしらえた。そしてその頑固がんこな精を和らげるには、ただ楽聖の手にまつよりほかはなかった。長い間その楽器は皇帝に秘蔵せられていたが、その弦から妙たえなる音ねをひき出そうと名手がかわるがわる努力してもそのかいは全くなかった。彼らのあらん限りの努力に答えるものはただ軽侮の音、彼らのよろこんで歌おうとする歌とは不調和な琴の音ばかりであった。
ついに伯牙はくがという琴の名手が現われた。御ぎょしがたい馬をしずめようとする人のごとく、彼はやさしく琴を撫ぶし、静かに弦をたたいた。自然と四季を歌い、高山を歌い、流水を歌えば、その古桐の追憶はすべて呼び起こされた。再び和らかい春風はその枝の間に戯れた。峡谷きょうこくをおどりながら下ってゆく若い奔流は、つぼみの花に向かって笑った。たちまち聞こえるのは夢のごとき、数知れぬ夏の虫の声、雨のばらばらと和らかに落ちる音、悲しげな郭公かっこうの声。聞け! 虎とらうそぶいて、谷これにこたえている。秋の曲を奏すれば、物さびしき夜に、剣つるぎのごとき鋭い月は、霜のおく草葉に輝いている。冬の曲となれば、雪空に白鳥の群れ渦巻うずまき、霰あられはぱらぱらと、嬉々ききとして枝を打つ。
次に伯牙は調べを変えて恋を歌った。森は深く思案にくれている熱烈な恋人のようにゆらいだ。空にはつんとした乙女おとめのような冴さえた美しい雲が飛んだ。しかし失望のような黒い長い影を地上にひいて過ぎて行った。さらに調べを変えて戦いを歌い、剣戟けんげきの響きや駒こまの蹄ひづめの音を歌った。すると、琴中に竜門りゅうもんの暴風雨起こり、竜は電光に乗じ、轟々ごうごうたる雪崩なだれは山々に鳴り渡った。帝王は狂喜して、伯牙に彼の成功の秘訣ひけつの存するところを尋ねた。彼は答えて言った、「陛下、他の人々は自己の事ばかり歌ったから失敗したのであります。私は琴にその楽想を選ぶことを任せて、琴が伯牙か伯牙が琴か、ほんとうに自分にもわかりませんでした。」と。
この物語は芸術鑑賞の極意ごくいをよく説明している。傑作というものはわれわれの心琴にかなでる一種の交響楽である。真の芸術は伯牙であり、われわれは竜門の琴である。美の霊手に触れる時、わが心琴の神秘の弦は目ざめ、われわれはこれに呼応して振動し、肉をおどらせ血をわかす。心は心と語る。無言のものに耳を傾け、見えないものを凝視する。名匠はわれわれの知らぬ調べを呼び起こす。長く忘れていた追憶はすべて新しい意味をもってかえって来る。恐怖におさえられていた希望や、認める勇気のなかった憧憬どうけいが、栄はえばえと現われて来る。わが心は画家の絵の具を塗る画布である。その色素はわれわれの感情である。その濃淡の配合は、喜びの光であり悲しみの影である。われわれは傑作によって存するごとく、傑作はわれわれによって存する。
이 이야기는 예술 감상의 비법을 잘 설명하고 있다.걸작이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일종의 교향악이다.진정한 예술은 백아요, 우리는 용문의 거문고다.미의 영수를 만질 때 우리 심금의 신비의 현은 깨어나고, 우리는 이에 호응하여 진동하여 살을 춤추게 하고 피를 끓인다.마음은 마음과 말한다. 말없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응시한다.명장은 우리가 모르는 가락을 불러 일으킨다.오래 잊었던 추억은 모두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돌아온다. 공포에 짓눌렸던 희망과 인정할 용기 없던 동경동경이 영화롭게 나타난다.내마음은화가의물감을바르는화포이다.그 색소는 우리의 감정이다.농담의 배합은 기쁨의 빛이며 슬픔의 그림자다.우리들은 걸작이 존재하듯 걸작은 우리들에 의해 존재한다.
美術鑑賞に必要な同情ある心の交通は、互譲の精神によらなければならない。美術家は通信を伝える道を心得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ように、観覧者は通信を受けるに適当な態度を養わなければならない。宗匠小堀遠州こぼりえんしゅうは、みずから大名でありながら、次のような忘れがたい言葉を残している。「偉大な絵画に接するには、王侯に接するごとくせよ。」傑作を理解しようとするには、その前に身を低うして息を殺し、一言一句も聞きもらさじと待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宋そうのある有名な批評家が、非常におもしろい自白をしている。「若いころには、おのが好む絵を描く名人を称揚したが、鑑識力の熟するに従って、おのが好みに適するように、名人たちが選んだ絵を好むおのれを称した。」現今、名人の気分を骨を折って研究する者が実に少ないのは、誠に歎かわしいことである。われわれは、手のつけようのない無知のために、この造作ぞうさのない礼儀を尽くすことをいとう。こうして、眼前に広げられた美の饗応きょうおうにもあずからないことがしばしばある。名人にはいつでもごちそうの用意があるが、われわれはただみずから味わう力がないために飢えている。
미술 감상에 필요한 동정어린 마음의 교통은 호양의 정신에 의해야 한다.미술가는 통신을 전달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듯이 관람자는 통신을 받기에 적당한 태도를 길러야 한다.종장 고보리 엔슈 코보리 연습은 스스로 다이묘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잊지 못할 말을 남겼다."위대한 그림을 접하려면 왕후를 만나는 것과 같이 하라." 걸작을 이해하려면 그 전에 몸을 낮추고 숨죽이고 한마디도 빠뜨리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송송의 한 유명한 비평가 가 아주 재미있는 자백을 하고 있다.젊은 시절에는 도끼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명인을 찬양했지만 감식력이 무르익어감에 따라 도끼가 취향에 맞게 명인들이 고른 그림을 좋아하는 나를 칭했다.' 지금 명인의 심정을 굽혀 연구하는 사람이 실로 드문 것은 참으로 탄스러운 일이다.우리는 분별없는 무지 때문에 이런 비범한 예의를 갖추기를 바란다.그리하여 눈앞에 펼쳐진 미의 향응도 받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명인에게는 언제든 음식을 대접하지만 우리는 단지 스스로 맛볼 힘이 없기 때문에 굶주려 있다.
同情ある人に対しては、傑作が生きた実在となり、僚友関係のよしみでこれに引きつけられるここちがする。名人は不朽である。というのは、その愛もその憂うれいも、幾度も繰り返してわれわれの心に生き残って行くから。われわれの心に訴えるものは、伎倆ぎりょうというよりは精神であり、技術というよりも人物である。呼び声が人間味のあるものであれば、それだけにわれわれの応答は衷心から出て来る。名人とわれわれの間に、この内密の黙契があればこそ詩や小説を読んで、その主人公とともに苦しみ共に喜ぶのである。わが国の沙翁しゃおう近松ちかまつは劇作の第一原則の一つとして、見る人に作者の秘密を打ち明かす事が重要であると定めた。弟子でしたちの中には幾人も、脚本をさし出して彼の称賛を得ようとした者があったが、その中で彼がおもしろいと思ったのはただ一つであった。それは、ふたごの兄弟が、人違いのために苦しむという『まちがいつづき』に多少似ている脚本であった。近松が言うには、「これこそ、劇本来の精神をそなえている。というのは、これは見る人を考えに入れているから公衆が役者よりも多く知ることを許されている。公衆は誤りの因を知っていて、哀れにも、罪もなく運命の手におちて行く舞台の上の人々を哀れむ。」と。
동정심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걸작이 살아 있는 실재가 되어, 요우 관계의 정의로 이것에 매혹되는 기분이 든다.명인은 불후다.그것은 그 사랑도 그 근심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우리 마음에 살아 남으니까.이들 마음에 호소하는 사람은 기량기량이라기보다는 정신이며 기술이라기보다는 인물이다.호칭이 인간미 있는 것이라면 그만큼 우리의 응답은 충심에서 나온다.명인과 우리 사이에 이 은밀한 묵계가 있기에 시나 소설을 읽고, 그 주인공과 함께 괴로워하며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우리 사옹사왕 근송치카마츠는 극작의 제1원칙 중 하나로 보는 사람에게 작자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하였다.제자들 중에는 여러 명이 각본을 내놓아 그의 칭찬을 얻고자 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그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 단 하나였다.그것은 쌍둥이 형제가 다른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는 오류와 다소 흡사한 각본이었다.그는 이야말로 극본래의 정신을 갖추고 있다.이것은 보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중이 배우보다 더 많이 알도록 허용하고 있다.공중은 실수의 원인을 알고 처량하게도 죄도 없이 운명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무대 위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다.
大家は、東西両洋ともに、見る人を腹心の友とする手段として、暗示の価値を決して忘れなかった。傑作をうちながめる人たれか心に浮かぶ綿々たる無限の思いに、畏敬いけいの念をおこさない者があろう。傑作はすべて、いかにも親しみあり、肝胆相照らしているではないか。これにひきかえ、現代の平凡な作品はいかにも冷ややかなものではないか。前者においては、作者の心のあたたかい流露を感じ、後者においては、ただ形式的の会釈を感ずるのみである。現代人は、技術に没頭して、おのれの域を脱することはまれである。竜門りゅうもんの琴を、なんのかいもなくかき鳴らそうとした楽人のごとく、ただおのれを歌うのみであるから、その作品は、科学には近かろうけれども、人情を離れること遠いのである。日本の古い俚諺りげんに「見えはる男には惚ほれられぬ。」というのがある。そのわけは、そういう男の心には、愛を注いで満たすべきすきまがないからである。芸術においてもこれと等しく、虚栄は芸術家公衆いずれにおいても同情心を害することはなはだしいものである。
芸術において、類縁の精神が合一するほど世にも神聖なものはない。その会するやたちまちにして芸術愛好者は自己を超越する。彼は存在すると同時に存在しない。彼は永劫えいごうを瞥見べっけんするけれども、目には舌なく、言葉をもってその喜びを声に表わすことはできない。彼の精神は、物質の束縛を脱して、物のリズムによって動いている。かくのごとくして芸術は宗教に近づいて人間をけだかくするものである。これによってこそ傑作は神聖なものとなるのである。昔日本人が大芸術家の作品を崇敬したことは非常なものであった。茶人たちはその秘蔵の作品を守るに、宗教的秘密をもってしたから、御神龕ごしんかん(絹地の包みで、その中へやわらかに包んで奥の院が納めてある)まで達するには、幾重にもある箱をすっかり開かねばならないことがしばしばあった。その作品が人目にふれることはきわめてまれで、しかも奥義を授かった人にのみ限られていた。
茶道の盛んであった時代においては、太閤たいこうの諸将は戦勝の褒美ほうびとして、広大な領地を賜わるよりも、珍しい美術品を贈られることを、いっそう満足に思ったものであった。わが国で人気ある劇の中には、有名な傑作の喪失回復に基づいて書いたものが多い。たとえば、ある劇にこういう話がある。細川侯ほそかわこうの御殿には雪村せっそんの描いた有名な達磨だるまがあったが、その御殿が、守りの侍の怠慢から火災にかかった。侍は万事を賭として、この宝を救い出そうと決心して、燃える御殿に飛び入って、例の掛け物をつかんだ、が、見ればはや、火炎にさえぎられて、のがれる道はなかったのである。彼は、ただその絵のことのみを心にかけて、剣をもっておのが肉を切り開き、裂いた袖そでに雪村を包んで、大きく開いた傷口にこれを突っ込んだ。火事はついにしずまった。煙る余燼よじんの中に、半焼の死骸しがいがあった。その中に、火の災いをこうむらないで、例の宝物は納まっていた。実に身の毛もよだつ物語であるが、これによって、信頼を受けた侍の忠節はもちろんのこと、わが国人がいかに傑作品を重んじるかということが説明される。
しかしながら、美術の価値はただそれがわれわれに語る程度によるものであることを忘れてはならない。その言葉は、もしわれわれの同情が普遍的であったならば、普遍的なものであるかもしれない。が、われわれの限定せられた性質、代々相伝の本性はもちろんのこと、慣例、因襲の力は美術鑑賞力の範囲を制限するものである。われらの個性さえも、ある意味においてわれわれの理解力に制限を設けるものである。そして、われらの審美的個性は、過去の創作品の中に自己の類縁を求める。もっとも、修養によって美術鑑賞力は増大するものであって、われわれはこれまでは認められなかった多くの美の表現を味わう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ものである。が、畢竟ひっきょうするところ、われわれは万有の中に自分の姿を見るに過ぎないのである。すなわちわれら特有の性質がわれらの理解方式を定めるのである。茶人たちは全く各人個々の鑑賞力の及ぶ範囲内の物のみを収集した。
하지만 미술의 가치는 단지 그것이 우리에게 말하는 정도에 달려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이 말은 만약 우리의 동정심이 보편적이었다면 보편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한정된 성질, 대대로 상전의 본성은 물론 관례, 인습의 힘은 미술감상력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우리의 개성조차도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이해력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그리고 우리의 심미적 개성은 과거의 창작품에서 자기 유래를 찾는다.무엇보다 수양을 통해 미술 감상력은 증대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인정받지 못했던 많은 미의 표현들을 맛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결국 필경 필경, 우리는 만유 속에서 자기 모습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즉 우리 특유의 성질이 우리의 이해방식을 정하는 것이다.다인들은 전혀 개개인의 감상력이 미치는 범위 내의 물건만을 수집했다.
これに連関して小堀遠州に関する話を思い出す。遠州はかつてその門人たちから、彼が収集する物の好みに現われている立派な趣味を、お世辞を言ってほめられた。「どのお品も、実に立派なもので、人皆嘆賞おくあたわざるところであります。これによって先生は、利休にもまさる趣味をお持ちになっていることがわかります。というのは、利休の集めた物は、ただ千人に一人しか真にわかるものがいなかったのでありますから。」と。遠州は歎じて、「これはただいかにも自分が凡俗であることを証するのみである。偉い利休は、自分だけにおもしろいと思われる物をのみ愛好する勇気があったのだ。しかるに私は、知らず知らず一般の人の趣味にこびている。実際、利休は千人に一人の宗匠であった。」と答えた。
実に遺憾にたえないことには、現今美術に対する表面的の熱狂は、真の感じに根拠をおいていない。われわれのこの民本主義の時代においては、人は自己の感情には無頓着むとんじゃくに世間一般から最も良いと考えられている物を得ようとかしましく騒ぐ。高雅なものではなくて、高価なものを欲し、美しいものではなくて、流行品を欲するのである。一般民衆にとっては、彼らみずからの工業主義の尊い産物である絵入りの定期刊行物をながめるほうが、彼らが感心したふりをしている初期のイタリア作品や、足利あしかが時代の傑作よりも美術鑑賞の糧かてとしてもっと消化しやすいであろう。彼らにとっては、作品の良否よりも美術家の名が重要である。数世紀前、シナのある批評家の歎じたごとく、世人は耳によって絵画を批評する。今日いずれの方面を見ても、擬古典的嫌悪けんおを感ずるのは、すなわちこの真の鑑賞力の欠けているためである。
なお一つ一般に誤っていることは、美術と考古学の混同である。古物から生ずる崇敬の念は、人間の性質の中で最もよい特性であって、いっそうこれを涵養かんようしたいものである。古いにしえの大家は、後世啓発の道を開いたことに対して、当然尊敬をうくべきである。彼らは幾世紀の批評を経て、無傷のままわれわれの時代に至り、今もなお光栄を荷にのうているというだけで、われわれは彼らに敬意を表している。が、もしわれわれが、彼らの偉業を単に年代の古きゆえをもって尊んだとしたならば、それは実に愚かなことである。しかもわれわれは、自己の歴史的同情心が、審美的眼識を無視するままに許している。美術家が無事に墳墓におさめられると、われわれは称賛の花を手向たむけるのである。進化論の盛んであった十九世紀には、人類のことを考えて個人を忘れる習慣が作られた。収集家は一時期あるいは一派を説明する資料を得んことを切望して、ただ一個の傑作がよく、一定の時期あるいは一派のいかなる多数の凡俗な作にもまさって、われわれを教える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を忘れている。われわれはあまりに分類し過ぎて、あまりに楽しむことが少ない。いわゆる科学的方法の陳列のために、審美的方法を犠牲にしたことは、これまで多くの博物館の害毒であった。
同時代美術の要求は、人生の重要な計画において、いかなるものにもこれを無視することはできない。今日の美術は真にわれわれに属するものである、それはわれわれみずからの反映である。これを罵倒ばとうする時は、ただ自己を罵倒するのである。今の世に美術無し、というが、これが責めを負うべき者はたれぞ。古人に対しては、熱狂的に嘆賞するにもかかわらず、自己の可能性にはほとんど注意しないことは恥ずべきことである。世に認められようとして苦しむ美術家たち、冷たき軽侮の影に逡巡しゅんじゅんしている疲れた人々よ! などというが、この自己本位の世の中に、われわれは彼らに対してどれほどの鼓舞激励を与えているか。過去がわれらの文化の貧弱を哀れむのも道理である。未来はわが美術の貧弱を笑うであろう。われわれは人生の美しい物を破壊することによって美術を破壊している。ねがわくは、ある大妖術者だいようじゅつしゃが出現して、社会の幹から、天才の手に触れて始めて鳴り渡る弦をそなえた大琴を作らんことを祈る。
그러나 일반적으로 잘못된 점은 미술과 고고학의 혼동이다.고물에서 생기는 숭경감은 인간의 성질 중 가장 좋은 특성이며, 더욱 이를 함양함양하고 싶은 것이다.옛 옛 대가는 후세 계발의 길을 열어준 데 대해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한다.그들은 수세기의 비평을 거쳐 상처없는 채 우리 시대에 왔고, 지금도 영광을 짊어지고 있다고 할 뿐 우리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들의 위업을 단지 연대의 낡은 고로움으로 존중했다면 그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다.더구나 우리는 자신의 역사적 동정심이 심미적 안목을 무시한 채 허용하고 있다.미술가가 무사히 봉분에 묻히면 우리는 찬양 꽃을 바치는 것이다.한창 진화론이었던 19세기에는 인류를 생각하고 개인을 잊는 습관이 만들어졌다.수집가들은 한 시기 혹은 한 파를 설명하는 자료를 얻기를 간절히 바라며, 단 한 개의 걸작이 좋고, 일정한 시기 혹은 한 파의 그 어떤 다수의 범속한 작품보다 더 우리를 가르치는 것임을 잊고 있다.우리는 분류하는 것이 너무 적고, 즐기는 것이 너무 적다.이른바 과학적 방법의 진열을 위해 심미적 방법을 희생한 것은 지금까지 많은 박물관의 해독이었다.
동시대 미술의 요구는 인생의 중요한 계획에서 어떤 것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오늘날의 미술은 진정으로 우리에게 속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반영이다.이를 매도 매도할 때는 그냥 자기를 매도하는 것이다.요즘 세상에 미술이 없다고 하지만, 이것이 책임질 사람은 없다.옛사람에 대해서는 열광적으로 탄상하는데도 자기의 가능성에 거의 주의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세상에 인정받으려고 괴로워하는 미술가들, 차가운 경모의 그림자에 준순하고 있는 피곤한 사람들이여! 등이라고 하는데, 이 자기본위의 세상에, 우리는 그들에게 얼마나 고무 격려를 주고 있는가.과거가 우리 문화의 빈약함을 불쌍히 여기는 것도 도리다.미래는 우리 미술의 빈약함을 비웃을 것이다.우리는 인생의 아름다운 것들을 파괴함으로써 미술을 파괴하고 있다.그는 한 대요술자 대요술자가 출현해 사회의 줄기에서 천재의 손을 만져 비로소 울리는 현을 갖춘 대금을 만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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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六章 花
春の東雲しののめのふるえる薄明に、小鳥が木の間で、わけのありそうな調子でささやいている時、諸君は彼らがそのつれあいに花のことを語っているのだと感じたことはありませんか。人間について見れば、花を観賞することはどうも恋愛の詩と時を同じくして起こっているようである。無意識のゆえに麗しく、沈黙のために芳しい花の姿でなくて、どこに処女おとめの心の解ける姿を想像することができよう。原始時代の人はその恋人に初めて花輪をささげると、それによって獣性を脱した。彼はこうして、粗野な自然の必要を超越して人間らしくなった。彼が不必要な物の微妙な用途を認めた時、彼は芸術の国に入ったのである。
喜びにも悲しみにも、花はわれらの不断の友である。花とともに飲み、共に食らい、共に歌い、共に踊り、共に戯れる。花を飾って結婚の式をあげ、花をもって命名の式を行なう。花がなくては死んでも行けぬ。百合ゆりの花をもって礼拝し、蓮はすの花をもって冥想めいそうに入り、ばらや菊花をつけ、戦列を作って突撃した。さらに花言葉で話そうとまで企てた。花なくてどうして生きて行かれよう。花を奪われた世界を考えてみても恐ろしい。病める人の枕まくらべに非常な慰安をもたらし、疲れた人々の闇やみの世界に喜悦の光をもたらすものではないか。その澄みきった淡い色は、ちょうど美しい子供をしみじみながめていると失われた希望が思い起こされるように、失われようとしている宇宙に対する信念を回復してくれる。われらが土に葬られる時、われらの墓辺を、悲しみに沈んで低徊ていかいするものは花である。
悲しいかな、われわれは花を不断の友としながらも、いまだ禽獣きんじゅうの域を脱することあまり遠くないという事実をおおうことはできぬ。羊の皮をむいて見れば、心の奥の狼おおかみはすぐにその歯をあらわすであろう。世間で、人間は十で禽獣、二十で発狂、三十で失敗、四十で山師、五十で罪人といっている。たぶん人間はいつまでも禽獣を脱しないから罪人となるのであろう。飢渇のほか何物もわれわれに対して真実なものはなく、われらみずからの煩悩ぼんのうのほか何物も神聖なものはない。神社仏閣は、次から次へとわれらのまのあたり崩壊ほうかいして来たが、ただ一つの祭壇、すなわちその上で至高の神へ香を焚たく「おのれ」という祭壇は永遠に保存せられている。われらの神は偉いものだ。金銭がその予言者だ! われらは神へ奉納するために自然を荒らしている物質を征服したと誇っているが、物質こそわれわれを奴隷にした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は忘れている。われらは教養や風流に名をかりて、なんという残忍非道を行なっているのであろう!
슬프구나, 우리는 꽃을 부단한 벗으로 삼으면서도 아직 금수금수의 영역을 벗어나는 데 그리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덮지는 못한다.양가죽을 벗겨 보면 마음 속의 늑대는 곧 이를 드러낼 것이다.세상에서 인간은 열에 금수, 스무에 발광, 서른에 실패, 마흔에 산사, 쉰에 죄인이라 일컫는다.아마 인간은 언제까지나 금수를 벗어나지 않으니 죄인이 되는 것일 게다.기갈 외에 그 무엇도 우리에게 진실한 것이 없고, 우리 스스로의 번뇌 말고는 아무것도 신성한 것이 없다.신사 불각은 우리 사이에 차례로 붕괴 붕괴되어 왔지만 단 하나의 제단, 즉 그 위에서 지고(至高)의 신에게 향을 피우는 '자기(己)'라는 제단은 영원히 보존되어 있다.우리의 신은 위대한 것이다.돈이 그 예언자야! 우리는 신에게 바치기 위해 자연을 해치고 있는 물질을 정복했다고 자랑하지만, 물질이야말로 우리를 노예로 만든 것임을 잊는다. 우리들은 교양과 풍류를 빌어 그 얼마나 잔인무도한 짓을 하고 있는가!
星の涙のしたたりのやさしい花よ、園に立って、日の光や露の玉をたたえて歌う蜜蜂みつばちに、会釈してうなずいている花よ、お前たちは、お前たちを待ち構えている恐ろしい運命を承知しているのか。夏のそよ風にあたって、そうしていられる間、いつまでも夢を見て、風に揺られて浮かれ気分で暮らすがよい。あすにも無慈悲な手が咽喉のどを取り巻くだろう。お前はよじ取られて手足を一つ一つ引きさかれ、お前の静かな家から連れて行ってしまわれるだろう。そのあさましの者はすてきな美人であるかもしれぬ。そして、お前の血でその女の指がまだ湿っている間は、「まあなんて美しい花だこと。」というかもしれぬ。だがね、これが親切なことだろうか。お前が、無情なやつだと承知している者の髪の中に閉じ込められたり、もしお前が人間であったらまともに見向いてくれそうにもない人のボタン穴にさされたりするのが、お前の宿命なのかもしれない。何か狭い器に監禁せられて、ただわずかのたまり水によって、命の衰え行くのを警告する狂わんばかりの渇かわきを止めているのもお前の運命なのかもしれぬ。
花よ、もし御門みかどの国にいるならば、鋏はさみと小鋸このこぎりに身を固めた恐ろしい人にいつか会うかもしれぬ。その人はみずから「生花の宗匠」と称している。彼は医者の権利を要求する。だから、自然彼がきらいになるだろう。というのは、医者というものはその犠牲になった人のわずらいをいつも長びかせようとする者だからね。彼はお前たちを切ってかがめゆがめて、彼の勝手な考えでお前たちの取るべき姿勢をきめて、途方もない変な姿にするだろう。もみ療治をする者のようにお前たちの筋肉を曲げ、骨を違わせるだろう。出血を止めるために灼熱しゃくねつした炭でお前たちを焦がしたり、循環を助けるためにからだの中へ針金をさし込むこともあろう。塩、酢、明礬みょうばん、時には硫酸を食事に与えることもあろう。お前たちは今にも気絶しそうな時に、煮え湯を足に注がれることもあろう。彼の治療を受けない場合に比べると、二週間以上も長くお前たちの体内に生命を保たせておくことができるのを彼は誇りとしているだろう。お前たちは初めて捕えられた時、その場で殺されたほうがよくはなかったか。いったいお前は前世でどんな罪を犯したとて、現世でこんな罰を当然受けねばならないのか。
西洋の社会における花の浪費は東洋の宗匠の花の扱い方よりもさらに驚き入ったものである。舞踏室や宴会の席を飾るために日々切り取られ、翌日は投げ捨てられる花の数はなかなか莫大ばくだいなものに違いない。いっしょにつないだら一大陸を花輪で飾ることもできよう。このような、花の命を全く物とも思わぬことに比ぶれば、花の宗匠の罪は取るに足らないものである。彼は少なくとも自然の経済を重んじて、注意深い慮おもんぱかりをもってその犠牲者を選び、死後はその遺骸いがいに敬意を表する。西洋においては、花を飾るのは富を表わす一時的美観の一部、すなわちその場の思いつきであるように思われる。これらの花は皆その騒ぎの済んだあとはどこへ行くのであろう。しおれた花が無情にも糞土ふんどの上に捨てられているのを見るほど、世にも哀れなものはない。
どうして花はかくも美しく生まれて、しかもかくまで薄命なのであろう。虫でも刺すことができる。最も温順な動物でも追いつめられると戦うものである。ボンネットを飾るために羽毛をねらわれている鳥はその追い手から飛び去ることができる、人が上着にしたいとむさぼる毛皮のある獣は、人が近づけば隠れることができる。悲しいかな! 翼ある唯一の花と知られているのは蝶ちょうであって、他の花は皆、破壊者に会ってはどうすることもできない。彼らが断末魔の苦しみに叫んだとても、その声はわれらの無情の耳へは決して達しない。われわれは、黙々としてわれらに仕えわれらを愛する人々に対して絶えず残忍であるが、これがために、これらの最もよき友からわれわれが見捨てられる時が来るかもしれない。諸君は、野生の花が年々少なくなってゆくのに気はつきませんか。それは彼らの中の賢人どもが、人がもっと人情のあるようになるまでこの世から去れと彼らに言ってきかせたのかもしれない。たぶん彼らは天へ移住してしまったのであろう。
草花を作る人のためには大いに肩を持ってやってもよい。植木鉢うえきばちをいじる人は花鋏はなばさみの人よりもはるかに人情がある。彼が水や日光について心配したり、寄生虫を相手に争ったり、霜を恐れたり、芽の出ようがおそい時は心配し、葉に光沢が出て来ると有頂天になって喜ぶ様子をうかがっているのは楽しいものである。東洋では花卉かき栽培の道は非常に古いものであって、詩人の嗜好しこうとその愛好する花卉はしばしば物語や歌にしるされている。唐宋とうそうの時代には陶器術の発達に伴なって、花卉を入れる驚くべき器が作られたということである。といっても植木鉢ではなく宝石をちりばめた御殿であった。花ごとに仕える特使が派遣せられ、兎うさぎの毛で作ったやわらかい刷毛はけでその葉を洗うのであった。牡丹ぼたんは、盛装した美しい侍女が水を与うべきもの、寒梅は青い顔をしてほっそりとした修道僧が水をやるべきものと書いた本がある。日本で、足利あしかが時代に作られた「鉢はちの木」という最も通俗な能の舞は、貧困な武士がある寒夜に炉に焚たく薪まきがないので、旅僧を歓待するために、だいじに育てた鉢の木を切るという話に基づいて書いたものである。その僧とは実はわが物語のハルンアルラシッド(三一)ともいうべき北条時頼ほうじょうときよりにほかならなかった。そしてその犠牲に対しては報酬なしではなかった。この舞は現今でも必ず東京の観客の涙を誘うものである。
か弱い花を保護するためには、非常な警戒をしたものであった。唐の玄宗げんそう皇帝は、鳥を近づけないために花園の樹枝に小さい金の鈴をかけておいた。春の日に宮廷の楽人を率いていで、美しい音楽で花を喜ばせたのも彼であった。わが国のアーサー王物語の主人公ともいうべき、義経よしつねの書いたものだという伝説のある、奇妙な高札が日本のある寺院(須磨寺すまでら)に現存している。それはある不思議な梅の木を保護するために掲げられた掲示であって、尚武しょうぶ時代のすごいおかしみをもってわれらの心に訴える。梅花の美しさを述べた後「一枝を伐きらば一指を剪きるべし。」という文が書いてある。花をむやみに切り捨てたり、美術品をばだいなしにする者どもに対しては、今日においてもこういう法律が願わくは実施せられよかしと思う。
しかし鉢植はちうえの花の場合でさえ、人間の勝手気ままな事が感ぜられる気がする。何ゆえに花をそのふるさとから連れ出して、知らぬ他郷に咲かせようとするのであるか。それは小鳥を籠かごに閉じこめて、歌わせようとするのも同じではないか。蘭らん類が温室で、人工の熱によって息づまる思いをしながら、なつかしい南国の空を一目見たいとあてもなくあこがれているとだれが知っていよう。
花を理想的に愛する人は、破れた籬まがきの前に座して野菊と語った陶淵明とうえんめいや、たそがれに、西湖せいこの梅花の間を逍遙しょうようしながら、暗香浮動の趣に我れを忘れた林和靖りんかせいのごとく、花の生まれ故郷に花をたずねる人々である。周茂叔しゅうもしゅくは、彼の夢が蓮はすの花の夢と混ずるように、舟中に眠ったと伝えられている。この精神こそは奈良朝ならちょうで有名な光明皇后こうみょうこうごうのみ心こころを動かしたものであって、「折りつればたぶさにけがるたてながら三世みよの仏に花たてまつる(三二)。」とお詠よみになった。
꽃을 이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찢어진 바자가 나무 앞에 앉아 들국화라고 말했던 도연명이나 황혼에 서호정자의 매화 사이를 소요 소요 소요하며 암향부동의 정취에 넋을 잃은 임화정 임화정처럼 고향을 찾는 이들이다.주무숙도숙은 그의 꿈이 연꽃 꿈과 섞이듯 배 안에서 잤다고 전해진다.이 정신이야말로 나라조 나라조로 유명한 광명황후 광명황후의 심심을 움직였던 것이니, "때마다 품에 털이 서려 삼세삼세의 부처님께 꽃을 바친다(三世三世三代)"고 영독하셨다.
しかしあまりに感傷的になることはやめよう。奢おごる事をいっそういましめて、もっと壮大な気持ちになろうではないか。老子いわく「天地不仁(三三)。」弘法大師こうぼうだいしいわく「生まれ生まれ生まれ生まれて生の始めに暗く、死に死に死に死んで死の終わりに冥くらし(三四)。」われわれはいずれに向かっても「破壊」に面するのである。上に向かうも破壊、下に向かうも破壊、前にも破壊、後ろにも破壊。変化こそは唯一の永遠である。何ゆえに死を生のごとく喜び迎えないのであるか。この二者はただ互いに相対しているものであって、梵ブラーマン(三五)の昼と夜である。古きものの崩解によって改造が可能となる。われわれは、無情な慈悲の神「死」をば種々の名前であがめて来た。拝火教徒が火中に迎えたものは、「すべてを呑噬どんぜいするもの」の影であった。今日でも、神道の日本人がその前にひれ伏すところのものは、剣魂つるぎだましいの氷のような純潔である。神秘の火はわれらの弱点を焼きつくし、神聖な剣は煩悩ぼんのうのきずなを断つ。われらの屍灰しかいの中から天上の望みという不死の鳥が現われ、煩悩を脱していっそう高い人格が生まれ出て来る。
花をちぎる事によって、新たな形を生み出して世人の考えを高尚こうしょうにする事ができるならば、そうしてもよいではないか。われわれが花に求むるところはただ美に対する奉納を共にせん事にあるのみ。われわれは「純潔」と「清楚せいそ」に身をささげる事によってその罪滅ぼしをしよう。こういうふうな論法で、茶人たちは生花の法を定めたのである。
하지만 너무 감상적이 되지는 말자.한턱내는것을 한층더훈계하고,더욱장해지지않을까.노자 가라사대, '천지불인(天地不仁, 삼삼). 홍법대사 고보대사 가라사대사가 말하기를 '태어나서 태어나서 생의 시작에 어둡고, 죽고 죽고 죽음의 끝에 명생(命生)'이라네. 우리는 어느 쪽으로도 '파괴'에 직면하는 것이다.위로도 파괴, 아래로도 파괴, 앞으로도 파괴, 뒤로도 파괴.변화야말로 유일한 영원이다.어찌 죽음을 삶과 같이 기뻐하며 맞이할 수 있겠는가.이 둘은 다만 서로 상대하고 있는 것으로 범블라만의 낮과 밤이다.고기의 붕괴에 따라 개조가 가능해진다.우리는 무정한 자비의 신 죽음을 갖가지 이름으로 떠받들어 왔다.배화교도가 화중에 맞은 것은 모든 것을 마시는 자의 그림자였다.오늘날에도 신도의 일본인이 그 앞에 엎드리는 것은 검혼의 칼과 같은 순결이다.신비의 불은 우리의 약점을 태워버리고, 신성한 칼은 번뇌 번뇌 번뇌의 굴레를 끊는다.우리의 시대사회 속에서 천상의 소망이라는 불사의 새가 나타나고 번뇌를 벗어나 한층 높은 인격이 태어난다.
꽃을 뜯음으로써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고 세인의 생각을 고상하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지 않을까.우리가 꽃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아름다움에 대한 봉납을 함께 하는 것에 있을 뿐이다.우리는 순결과 청초에 몸을 바침으로써 그 속죄를 하자.이런 식으로 다인들은 생화의 법을 정한 것이다.
わが茶や花の宗匠のやり口を知っている人はだれでも、彼らが宗教的の尊敬をもって花を見る事に気がついたに違いない。彼らは一枝一条もみだりに切り取る事をしないで、おのが心に描く美的配合を目的に注意深く選択する。彼らは、もし絶対に必要の度を越えて万一切り取るようなことがあると、これを恥とした。これに関連して言ってもよろしいと思われる事は、彼らはいつも、多少でも葉があればこれを花に添えておくという事である。というのは、彼らの目的は花の生活の全美を表わすにあるから。この点については、その他の多くの点におけると同様、彼らの方法は西洋諸国に行なわれるものとは異なっている。かの国では、花梗かこうのみ、いわば胴のない頭だけが乱雑に花瓶かびんにさしこんであるのをよく見受ける。
茶の宗匠が花を満足に生けると、彼はそれを日本間の上座にあたる床の間に置く。その効果を妨げるような物はいっさいその近くにはおかない。たとえば一幅の絵でも、その配合に何か特殊の審美的理由がなければならぬ。花はそこに王位についた皇子のようにすわっている、そして客やお弟子でしたちは、その室に入るやまずこれに丁寧なおじぎをしてから始めて主人に挨拶あいさつをする。生花の傑作を写した絵が素人しろうとのために出版せられている。この事に関する文献はかなり大部なものである。花が色あせると宗匠はねんごろにそれを川に流し、または丁寧に地中に埋める。その霊を弔って墓碑を建てる事さえもある。
花道の生まれたのは十五世紀で、茶の湯の起こったのと同時らしく思われる。わが国の伝説によると、始めて花を生けたのは昔の仏教徒であると言う。彼らは生物に対する限りなき心やりのあまり、暴風に散らされた花を集めて、それを水おけに入れたということである。足利義政あしかがよしまさ時代の大画家であり、鑑定家である相阿弥そうあみは、初期における花道の大家の一人であったといわれている。茶人珠光しゅこうはその門人であった。また絵画における狩野かのう家のように、花道の記録に有名な池の坊の家元専能せんのうもこの人の門人であった。十六世紀の後半において、利休によって茶道が完成せられるとともに、生花も充分なる発達を遂げた。利休およびその流れをくんだ有名な織田有楽おだうらく、古田織部ふるたおりべ、光悦こうえつ、小堀遠州こぼりえんしゅう、片桐石州かたぎりせきしゅうらは新たな配合を作ろうとして互いに相競った。しかし茶人たちの花の尊崇は、ただ彼らの審美的儀式の一部をなしたに過ぎないのであって、それだけが独立して、別の儀式をなしてはいなかったという事を忘れてはならぬ。生花は茶室にある他の美術品と同様に、装飾の全配合に従属的なものであった。ゆえに石州は「雪が庭に積んでいる時は白い梅花を用いてはならぬ。」と規定した。「けばけばしい」花は無情にも茶室から遠ざけられた。茶人の生けた生花はその本来の目的の場所から取り去ればその趣旨を失うものである。と言うのは、その線やつり合いは特にその周囲のものとの配合を考えてくふうしてあるのであるから。
花を花だけのために崇拝する事は、十七世紀の中葉、花の宗匠が出るようになって起こったのである。そうなると茶室には関係なく、ただ花瓶かびんが課する法則のほかには全く法則がなくなった。新しい考案、新しい方法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これらから生まれ出た原則や流派がたくさんあった。十九世紀のある文人の言うところによれば、百以上の異なった生花の流派をあげる事ができる。広く言えばこれら諸流は、形式派と写実派の二大流派に分かれる。池の坊を家元とする形式派は、狩野派かのうはに相当する古典的理想主義をねらっていた。初期のこの派の宗匠の生花の記録があるが、それは山雪さんせつや常信つねのぶの花の絵をほとんどそのままにうつし出したものである。一方写実派はその名の示すごとく、自然をそのモデルと思って、ただ美的調和を表現する助けとなるような形の修正を加えただけである。ゆえにこの派の作には浮世絵や四条派の絵をなしている気分と同じ気分が認められる。
時の余裕があれば、この時代の幾多の花の宗匠の定めた生花の法則になお詳細に立ち入って、徳川時代の装飾を支配していた根本原理を明らかにすること(そうすれば明らかになると思われるが)は興味あることであろう。彼らは導く原理(天)、従う原理(地)、和の原理(人)のことを述べている、そしてこれらの原理をかたどらない生花は没趣味な死んだ花であると考えられた。また花を、正式、半正式、略式の三つの異なった姿に生ける必要を詳述している。第一は舞踏場へ出るものものしい服装をした花の姿を現わし、第二はゆったりとした趣のある午後服の姿を現わし、第三は閨房けいぼうにある美しい平常着の姿を現わすともいわれよう。
われらは花の宗匠の生花よりも茶人の生花に対してひそかに同情を持つ。茶人の花は、適当に生けると芸術であって、人生と真に密接な関係を持っているからわれわれの心に訴えるのである。この流派を、写実派および形式派と対称区別して、自然派と呼びたい。茶人たちは、花を選択することでかれらのなすべきことは終わったと考えて、その他のことは花みずからの身の上話にまかせた。晩冬のころ茶室に入れば、野桜の小枝につぼみの椿つばきの取りあわせてあるのを見る。それは去らんとする冬のなごりときたらんとする春の予告を配合したものである。またいらいらするような暑い夏の日に、昼のお茶に行って見れば、床の間の薄暗い涼しい所にかかっている花瓶かびんには、一輪の百合ゆりを見るであろう。露のしたたる姿は、人生の愚かさを笑っているように思われる。
우리는 꽃 종장의 생화보다 다인의 생화에 대해 은근히 동정심을 갖는다.다인의 꽃은 적당히 살리면 예술이고, 인생과 진정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다.이 유파를, 사실파 및 형식파와 대칭 구별하고, 자연파라고 부르고 싶다.다인들은 꽃을 선택하는 것으로 그들의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그 밖의 일은 꽃 스스로의 신세 타령에 맡겼다.늦겨울 때 다실에 들어가면 들벚꽃 잔가지에 꽃봉오리 동백 동백꽃이 붙어 있는 것을 본다.그것은 떠나려 하는 겨울의 자취와 함께 다가올 봄의 예고를 배합한 것이다.또 짜증날 정도로 더운 여름날 낮차를 마시러 가다 보면, 도코노마의 어두컴컴한 서늘한 곳에 걸려 있는 꽃병 꽃병에서 백합 한 송이를 보게 될 것이다.이슬이 맺히는 모습은 인생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花の独奏ソロはおもしろいものであるが、絵画、彫刻の協奏曲コンチェルトとなれば、その取りあわせには人を恍惚こうこつとさせるものがある。石州はかつて湖沼の草木を思わせるように水盤に水草を生けて、上の壁には相阿弥そうあみの描いた鴨かもの空を飛ぶ絵をかけた。紹巴じょうはという茶人は、海辺の野花と漁家の形をした青銅の香炉に配するに、海岸のさびしい美しさを歌った和歌をもってした。その客人の一人は、その全配合の中に晩秋の微風を感じたとしるしている。
花物語は尽きないが、もう一つだけ語ることにしよう。十六世紀には、朝顔はまだわれわれに珍しかった。利休は庭全体にそれを植えさせて、丹精たんせいこめて培養した。利休の朝顔の名が太閤たいこうのお耳に達すると太閤はそれを見たいと仰せいだされた。そこで利休はわが家の朝の茶の湯へお招きをした。その日になって太閤は庭じゅうを歩いてごらんになったが、どこを見ても朝顔のあとかたも見えなかった。地面は平らかにして美しい小石や砂がまいてあった。その暴君はむっとした様子で茶室へはいった。しかしそこにはみごとなものが待っていて彼のきげんは全くなおって来た。床の間には宋細工そうざいくの珍しい青銅の器に、全庭園の女王である一輪の朝顔があった。
こういう例を見ると、「花御供はなごく」の意味が充分にわかる。たぶん花も充分にその真の意味を知るであろう。彼らは人間のような卑怯者ひきょうものではない。花によっては死を誇りとするものもある。たしかに日本の桜花は、風に身を任せて片々と落ちる時これを誇るものであろう。吉野よしのや嵐山あらしやまのかおる雪崩なだれの前に立ったことのある人は、だれでもきっとそう感じたであろう。宝石をちりばめた雲のごとく飛ぶことしばし、また水晶の流れの上に舞い、落ちては笑う波の上に身を浮かべて流れながら「いざさらば春よ、われらは永遠の旅に行く。」というよう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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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章 茶の宗匠
宗教においては未来がわれらの背後にある。芸術においては現在が永遠である。茶の宗匠の考えによれば芸術を真に鑑賞することは、ただ芸術から生きた力を生み出す人々にのみ可能である。ゆえに彼らは茶室において得た風流の高い軌範によって彼らの日常生活を律しようと努めた。すべての場合に心の平静を保たねばならぬ、そして談話は周囲の調和を決して乱さないように行なわなければならぬ。着物の格好や色彩、身体の均衡や歩行の様子などすべてが芸術的人格の表現でなければならぬ。これらの事がらは軽視することのできないものであった。というのは、人はおのれを美しくして始めて美に近づく権利が生まれるのであるから。かようにして宗匠たちはただの芸術家以上のものすなわち芸術そのものとなろうと努めた。それは審美主義の禅であった。われらに認めたい心さえあれば完全は至るところにある。利休は好んで次の古歌を引用した。
종교에 있어서는 미래가 우리의 배후에 있다. 예술에 있어서는 현재가 영원하다. 차의 종장의 생각에 따르면 예술을 진정으로 감상하는 것은 오직 예술에서 살아 숨쉬는 힘을 창출하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다실에서 얻은 풍류 높은 궤범으로 그들의 일상을 다스리려 애썼다. 모든 경우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하며, 그리고 담화는 주위의 조화를 결코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옷의 모양이나 색채, 신체의 균형이나 보행 모습 등이 모두 예술적 인격의 표현이어야 한다. 이러한 사안은 경시할 수 없었다. 사람은 스스로 아름다워질 때 비로소 아름다움에 접근할 권리가 생기기 때문이다.처럼 종장들은 단순한 예술가 이상의 것, 즉 예술 그 자체가 되려고 노력했다.그것은 심미주의의 선이었다. 우리에게 인정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완전은 도처에 있다.(As long as we want to acknowledge it, perfection is everywhere.) 리큐는 즐겨 다음 고가를 인용했다.
花をのみ待つらん人に山里の雪間の草の春を見せばや(三六)
꽃을 마시고 기다리는 난인에게 산골 눈 사이 풀의 봄을 보여주고 싶구나
茶の宗匠たちの芸術に対する貢献は実に多方面にわたっていた。彼らは古典的建築および屋内の装飾を全く革新して、前に茶室の章で述べた新しい型を確立した。その影響は十六世紀以後に建てられた宮殿寺院さえも皆これをうけている。多能な小堀遠州こぼりえんしゅうは、桂かつらの離宮、名古屋なごやの城および孤篷庵こほうあんに、彼が天才の著名な実例をのこしている。日本の有名な庭園は皆茶人によって設計せられたものである。わが国の陶器はもし彼らが鼓舞を与えてくれなかったら、優良な品質にはたぶんならなかったであろう。茶の湯に用いられた器具の製造のために、製陶業者のほうではあらん限りの新くふうの知恵を絞ったのであった。遠州の七窯なながまは日本の陶器研究者の皆よく知っているところである。わが国の織物の中には、その色彩や意匠を考案した宗匠の名を持っているものが多い。実際、芸術のいかなる方面にも、茶の宗匠がその天才の跡をのこしていないところはない。絵画、漆器に関しては彼らの尽くした莫大ばくだいの貢献についていうのはほとんど贅言ぜいげんと思われる。絵画の一大派はその源を、茶人であり同時にまた塗師ぬし、陶器師として有名な本阿弥光悦ほんあみこうえつに発している。彼の作品に比すれば、その孫の光甫こうほや甥おいの子光琳こうりんおよび乾山けんざんの立派な作もほとんど光を失うのである。いわゆる光琳派はすべて、茶道の表現である。この派の描く太い線の中に、自然そのものの生気が存するように思われる。
차종장들의 예술에 대한 기여는 실로 다양했다.이들은 고전적 건축 및 실내 장식을 완전히 혁신하여 앞서 다실 장에서 언급한 새로운 틀을 확립하였다.그 영향은 16세기 이후에 세워진 궁전 사원들조차도 모두 이를 받았다.다능한 고보리 엔슈 코보리 연습은 가쓰라 가쓰라의 이궁, 나고야 나고야의 성 및 고비암 옛 법안에 그가 천재의 저명한 실례를 남기고 있다.일본의 유명한 정원은 모두 다인(茶人)이 설계한 것이다.우리나라 도자기는 만약 그들이 고무를 주지 않았더라면 우량한 품질에는 아마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다도에 사용한 기구의 제조를 위해 제도업자가 신궁리를 최대한 짜냈던 것이다.엔슈의 나나요나가마는 일본의 도기 연구가들이 잘 알고 있는 곳이다.우리나라의 직물 중에는 그 색채와 의장을 고안한 종장의 이름을 가진 것이 많다.사실 예술의 어떤 방면에도 차의 종장이 그 천재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곳은 없다.회화 칠기에 관해선 그들이 다한 막대한 공헌에 대해 거의 군말세원이라고 할 수 있다.그림의 일대파는 그 근원을 다인이자 또 도사주, 도기사로 유명한 혼아미코에츠에서 발원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비하면 손자 광보 후보나 조카 광림 및 건산의 훌륭한 작들도 거의 빛을 잃는다. 이른바 광림파는 모두 다도(茶道)이 파가 그리는 굵은 선 속에 자연 그 자체의 생기가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茶の宗匠が芸術界に及ぼした影響は偉大なものではあったが、彼らが処世上に及ぼした影響の大なるに比すれば、ほとんど取るに足らないものである。上流社会の慣例におけるのみならず、家庭の些事さじの整理に至るまで、われわれは茶の宗匠の存在を感ずるのである。配膳法はいぜんほうはもとより、美味の膳部の多くは彼らの創案したものである。彼らは落ち着いた色の衣服をのみ着用せよと教えた。また生花に接する正しい精神を教えてくれた。彼らは、人間は生来簡素を愛するものであると強調して、人情の美しさを示してくれた。実際、彼らの教えによって茶は国民の生活の中にはいったのである。
차의 종장이 예술계에 미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들이 이 세상에 미친 영향의 크기에 비하면 거의 보잘것없다. 상류사회의 관례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의 사소사정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차의 종장의 존재를 느낀다. 배식법은 이전 법은 물론, 맛있는 음식의 대부분은 그들이 창안한 것이다. 이들은 차분한 색상의 옷만 입으라고 가르쳤다. 또 꽃꽂이를 대하는 바른 정신을 가르쳐 주었다. 이들은 인간은 본디 간소함을 사랑한다는 점을 강조해 인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실제로 이들의 가르침에 따라 차는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この人生という、愚かな苦労の波の騒がしい海の上の生活を、適当に律してゆく道を知らない人々は、外観は幸福に、安んじているようにと努めながらも、そのかいもなく絶えず悲惨な状態にいる。われわれは心の安定を保とうとしてはよろめき、水平線上に浮かぶ雲にことごとく暴風雨の前兆を見る。しかしながら、永遠に向かって押し寄せる波濤はとうのうねりの中に、喜びと美しさが存している。何ゆえにその心をくまないのであるか、また列子のごとく風そのものに御ぎょしないのであるか。
이 인생이라는 어리석은 고생물결의 소란스러운 바다 위의 생활을 적당히 다스려 나갈 줄 모르는 사람들은 겉모습은 행복하게, 안심하고 있으려고 애쓰면서도 그 보람도 없이 끊임없이 비참한 상태에 있다. 우리는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다 비틀거리고 수평선 위에 뜬 구름마다 폭풍우의 전조를 본다. 그러나 영원을 향해 밀려오는 파도 속에 기쁨과 아름다움이 자리 잡고 있다. (We stumble while trying to find peace of mind and see the foreshadow of a storm in every cloud on the horizon. However, joy and beauty are in the waves that come toward eternity.)어째서 그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가, 또 열자(列子)처럼 바람 그 자체로 다스리지 않는가.
美を友として世を送った人のみが麗しい往生をすることができる。大宗匠たちの臨終はその生涯しょうがいと同様に絶妙都雅なものであった。彼らは常に宇宙の大調和と和しようと努め、いつでも冥土めいどへ行くの覚悟をしていた。利休の「最後の茶の湯」は悲壮の極として永久にかがやくであろう。
미를 벗삼아 세상을 보낸 사람만이 아름다운 왕생을 할 수 있다. 대종장들의 임종은 생애만큼이나 절묘했다. 그들은 늘 우주의 조화로운 화합을 위해 노력했고 언제든 저승길로 갈 각오가 돼 있었다.리큐의 마지막 다도는 비장의 극으로서 영구히 빛날 것이다.
利休と太閤秀吉たいこうひでよしとの友誼は長いものであって、この偉大な武人が茶の宗匠を尊重したことも非常なものであった。しかし暴君の友誼はいつも危険な光栄である。その時代は不信にみちた時代であって、人は近親の者さえも信頼しなかった。利休は媚こびへつらう佞人ねいじんではなかったから、恐ろしい彼の後援者と議論して、しばしば意見を異にするをもはばからなかった。太閤と利休の間にしばらく冷ややかな感情のあったのを幸いに、利休を憎む者どもは利休がその暴君を毒害しようとする一味の連累であると言った。宗匠のたてる一碗わんの緑色飲料とともに、命にかかわる毒薬が盛られることになっているということが、ひそかに秀吉の耳にはいった。秀吉においては、嫌疑けんぎがあるというだけでも即時死刑にする充分な理由であった、そしてその怒れる支配者の意に従うよりほかに哀訴の道もなかったのである。死刑囚にただ一つの特権が許された、すなわち自害するという光栄である。
리큐와 타이코 히데요시(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우의는 길었고, 이 위대한 무인이 다도의 종장을 존중한 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폭군의 우의는 언제나 위험한 영광(Tyrant's friendship is always a dangerous honor)이다. 그 시대는 불신에 가득 찬 시대여서, 사람은 근친의 사람조차 신뢰하지 않았다. 리큐는 아첨하는 영녕인이 아니어서 무서운 그의 후원자와 논의하여 종종 의견을 달리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토요토미와 리큐 사이에 잠시 냉랭한 감정이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리큐를 증오하는 자들은 리큐가 그 폭군을 독해하려는 일당의 연루라고 말했다. 종장이 짓는 한 그릇짜리 녹색음료와 함께 생명에 관계되는 독약이 담기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히데요시의 귀에 들어갔다. 히데요시는 혐의혐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즉시 사형시킬 충분한 이유였다, 그리고 그 분노한 지배자의 뜻에 따르는 것 외에 달리 애소의 길도 없었다. 사형수에게 단 하나의 특권이 허용된, 즉 자해한다는 영광이다.
利休が自己犠牲をすることに定められた日に、彼はおもなる門人を最後の茶の湯に招いた。客は悲しげに定刻待合に集まった。庭径をながむれば樹木も戦慄せんりつするように思われ、木の葉のさらさらとそよぐ音にも、家なき亡者もうじゃの私語が聞こえる。地獄の門前にいるまじめくさった番兵のように、灰色の燈籠とうろうが立っている。珍香の香が一時に茶室から浮動して来る。それは客にはいれとつげる招きである。一人ずつ進み出ておのおのその席につく。床の間には掛け物がかかっている、それは昔ある僧の手になった不思議な書であって浮世のはかなさをかいたものである。火鉢ひばちにかかって沸いている茶釜ちゃがまの音には、ゆく夏を惜しみ悲痛な思いを鳴いている蝉せみの声がする。やがて主人が室に入る。おのおの順次に茶をすすめられ、順次に黙々としてこれを飲みほして、最後に主人が飲む。定式に従って、主賓がそこでお茶器拝見を願う。利休は例の掛け物とともにいろいろな品を客の前におく。皆の者がその美しさをたたえて後、利休はその器を一つずつ一座の者へ形見として贈る。茶わんのみは自分でとっておく。「不幸の人のくちびるによって不浄になった器は決して再び人間には使用させない。」と言ってかれはこれをなげうって粉砕する。
리큐가 자기 희생을 하기로 정해진 날에, 그는 겹치는 문간을 마지막 다도에 초대했다.손님들은 슬픈 듯이 정각 대합에 모였다. 정원경을 바라보면 나무들도 전율하는 듯하고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집 없는 망자도 우자의 사담이 들린다. 지옥의 문 앞에 있는 진지한 보초병처럼 회색 등롱이 서 있다. 진향이 일시에 다실 안을 맴돈다. 그것은 손님에게 들어오라고하는 초대다. 한 사람씩 나서서 각자 그 자리에 앉는다. 도코노마에는 족자가 걸려 있는, 그것은 옛날 어느 승려의 손이 된 불가사의한 서적으로 속세의 덧없음을 적은 것이다. 화롯불에 걸려 끓는 찻솥 소리에는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비통해 하는 매미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주인이 방에 들어간다. 저마다 차례차례 차를 권하고, 차례차례 묵묵히 이를 들이키고, 마지막으로 주인이 마신다. 정식에 따라 주빈이 그곳에서 다기 관람을 원한다. 리큐는 예의 그 족자와 함께 여러 가지 물건을 손님 앞에 놓는다. 모두가 그 아름다움을 찬양한 후, 리큐는 그 그릇을 하나씩 좌중의 사람에게 유품으로서 선물한다.찻잔은 자기가 떠놓다.'불행한 사람의 입술로 인해 부정해진 그릇은 결코 다시 인간에게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며 그는 이를 내던지고 분쇄한다.
その式は終わった、客は涙をおさえかね、最後の訣別けつべつをして室を出て行く。彼に最も親密な者がただ一人、あとに残って最期を見届けてくれるようにと頼まれる。そこで利休は茶会の服を脱いで、だいじにたたんで畳の上におく、それでその時まで隠れていた清浄無垢むくな白い死に装束があらわれる。彼は短剣の輝く刀身を恍惚こうこつとながめて、次の絶唱を詠よむ。
그 식은 끝났다, 손님들은 눈물을 참기 위해 마지막 결별 결별을 하고 방을 떠난다.그에게 가장 친밀한 사람은 단 한 사람 뒤에 남아 최후를 지켜봐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그래서 리큐는 다도회 옷을 벗어 소중히 개어 다다미 위에 놓는다, 그래서 그때까지 숨어 있던 청정무구한 흰 죽음에 의복이 나타난다.그는 단검의 빛나는 도신을 황홀하게 바라보며 다음 절창을 읊조린다.
人生七十 力囲希咄 吾這この宝剣 祖仏共に殺す(三七)
인생 70년, 에이! 얏! 우리 이 보검으로 조불도 함께 우리와 함께 죽여라
笑えみを顔にうかべながら、利休は冥土めいどへ行ったのであった。
웃음띤 얼굴로 리큐는 저승으로 갔다.
注
番号
一 『インド生活の組織』―― The Sister Nivedita 著。
二 Paul Kransel 著、Dissertations, Berlin, 1902.
三 陸羽――字は鴻漸、桑苧翁と号した。唐の徳宗時代の人。
四 茶経には一之源、二之具、三之造とある。
五 胡人の※(「革+華」、第4水準2-92-10)のごとくなる者蹙縮然たり――如二胡人※(「革+華」、第4水準2-92-10)一者蹙縮然。※(「革+華」、第4水準2-92-10)は高ぐつ。蹙縮は※(「革+華」、第4水準2-92-10)の針縫いの所のしまり縮まるを言う。
六 ※(「封/牛」、第4水準2-80-24)牛の臆なる者廉※[#「ころもへん+譫のつくり」、U+895C、89-9]然たり――※(「封/牛」、第4水準2-80-24)牛臆者廉※[#「ころもへん+譫のつくり」、U+895C、89-9]然。※(「封/牛」、第4水準2-80-24)牛は野牛。廉※[#「ころもへん+譫のつくり」、U+895C、89-9]は衣装などの裁ち目たたみ目などのそろったさま。これは※(「封/牛」、第4水準2-80-24)牛の臆むねのすじの通ったのを言う。
七 浮雲の山をいずる者輪菌然たり――浮雲出レ山者輪菌然。輪菌は丸くてねじける。雲のたちのぼるさまを言う。
八 軽※(「風にょう+(火/(火+火))」、第3水準1-94-8)の水を払う者涵澹然たり――軽※(「風にょう+(火/(火+火))」、第3水準1-94-8)払レ水者涵澹然。涵澹は水のさま。少し波立つ状態を言う。
九 また新治の地なる者暴雨流潦の経る所に遇うがごとし――又如三新治地着遇二暴雨流潦之所一レ経。新治の地は瓦礫がれきを去ったやわらかな土面、雨水にあった跡を言う。潦は路上の流水。
一〇 風炉――灰うけ、風炉とは風を通すによって名づける。今の風炉は名のみのこるものである。
一一 魚目――小さい湯玉を魚目にたとえる。
一二 縁辺の涌泉蓮珠――湯のにえあがるのを泉にたとえ、湯玉の多いのを連珠にたとえる。
一三 騰波鼓浪――波だち、波うつ。
一四 「華」――茶気。
一五 晴天爽朗なるに浮雲鱗然たるあるがごとし――如三晴天爽朗有二浮雲鱗然一。雲のかたちを魚のうろこにたとえる。
一六 その沫は緑銭の水渭に浮かべるがごとし――其沫者若三緑銭浮二於水渭一。緑銭とは水草の葉。渭は※(「さんずい+眉」、第3水準1-86-89)びの字が正しいであろう。
一七 一椀喉吻潤い、二椀孤悶を破る。三椀枯腸をさぐる。惟うに文字五千巻有り。四椀軽汗を発す。平生不平の事ことごとく毛孔に向かって散ず。五椀肌骨清し。六椀仙霊に通ず。七椀吃し得ざるに也ただ覚ゆ両腋習々清風の生ずるを。蓬莱山はいずくにかある玉川子この清風に乗じて帰りなんと欲す。――一椀喉吻潤。二椀破二孤悶一。三椀捜二枯腸一、惟有二文字五千巻一。四椀発二軽汗一。平生不平事尽向二毛孔一散。五椀肌骨清。六椀通二仙霊一。七椀吃不レ得、也唯覚両腋習習清風生。蓬莱山在二何処一、玉川子乗二此清風一欲二帰去一。枯腸は文藻ぶんそうの乏しきを言う。習習は春風の和らぎ舒のびるかたち。玉川子とは盧同自身をさす。
一八 関尹――関令尹喜かんれいいんき。周の哲学者、姓は尹、名は喜、関の守吏であったので、関尹子と称せられた。
一九 Dr.Paul Carus 著、Taotei king.
二〇 トラスト―― trusts 購買組合の便宜を指すものであろう。
二一 公孫竜こうそんりゅうの「堅白論」「白馬非馬論」。
二二 予として冬川を渉るがごとく、猶として四隣をおそるるがごとく、儼としてそれ客のごとく、渙として冰のまさに釈けんとするがごとく、敦としてそれ樸のごとく、曠としてそれ谷のごとく、渾としてそれ濁るがごとし。――予兮若二冬渉一レ川。猶兮若レ畏二四隣一。儼兮其若レ客。渙兮若二冰将一レ釈。敦兮其若レ樸。曠兮其若レ谷。渾兮其若レ濁。(老子古之善為士章第十五)「予として」は前を見、後をおもんぱかるの意。「猶として」は疑いて行かざるの意。渙は物の離散するをいう。敦は敦原の意。樸はあら木。渾は混に同じ、濁るかたち。
二三 慈、険、及不三敢為二天下先一。(天下皆謂章第六十七)
二四 那伽閼剌樹那[#「那伽閼剌樹那」は底本では「那伽閼刺樹那」]――釈迦没後七百年頃南インドに生れる。大乗経典を研究、その弘伝者として大乗諸宗の祖師といわれる。
二五 商羯羅阿闍梨――七八九年頃南インドに生れる。インド教の復興者、婆羅門哲学の大成者として知られる。
二六 無明――経験界。
二七 馥柯羅摩訶秩多――維摩経ではこの典拠不明。維摩居士のことか。
二八 利休が「富田左近とみたさこんへ露地のしつらい教うるとて」示したものは「樫かしの葉のもみじぬからにちりつもる奥山寺の道のさびしさ。」で、つづく歌は、千家流に伝える七事の式おきてがきの一つである。
二九 見渡せば……――藤原定家作。千家流に伝えられる七事式の法策書おきてがきの一つである。
三〇 夕月夜……――「茶話指月集」による。
三一 ハルンアルラシッド――『アラビアン・ナイト』(千一夜物語)の主人公。
三二 後撰集に僧正遍昭そうじょうへんじょう作として同様のものがある。なお、為頼朝臣集ためよりあそんしゅうに「折りつれば心もけがるもとながら今の仏にはな奉る」とあり、光明皇后こうみょうこうごうの御詠として「わがために花は手折たおらじされどただ三世の諸仏の前にささげん」としたものもある。
三三 「天地不仁。」――原文は「仁とせず」あるいは「不仁ならんや」と読む人もあるがここには「仁ならず」として引用してある。
三四 大師作、『秘蔵宝鑰ひぞうほうやく』の序より。
三五 梵――インドの波羅門教における最高原理。
三六 花をのみ……――藤原家隆作。利休はわびの本意とてこの歌を常に吟じておったとのことである。
三七 人生七十力囲希咄。吾が這の宝剣祖仏共に殺す――人生七十 力囲希咄 吾這宝剣 祖仏共殺。「力囲希咄」を「リキイキトツ」と読むのは、元禄げんろく十五年出版の、河東散人鷯巣りょうそうが藤村庸軒ふじむらようけんの説話を筆録したという「茶話指月集」の読み方によったものである。意味は徳川時代から茶人の間の問題となっていて、諸説紛々。今泉雄作いまいずみゆうさく氏の説では、禅の喝かつのような一種の間投詞で、「ええなんじゃいの」といった意味であるとのこと。京都表千家に伝えられている利休の真蹟には「人世」、力※[#「囗<力」、U+361E、92-14]となっている由である。また「禅林僧室伝」巻三、雲門文偃章下に、雲門偈ニ云ク、咄咄咄力※[#「囗<力」、U+361E、92-15]希禅子訝ル中眉垂ルとある。英文には、この語句の意味を思わせるところは表われていない。
岡倉覚三 村岡博訳 茶の本 茶の本
第一章 人情の碗 茶は日常生活の俗事の中に美を崇拝する一種の審美的宗教すなわち茶道の域に達す――茶道は社会の上下を通じて広まる――新旧両世界の誤解――西洋における茶の崇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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