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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Hack

갈기를 다듬고 빗는 작업

Jin_x 2020. 12. 4. 17:00

간단히 글을 쓰는 일부터 미뤄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어떤 200일을 기념하는 편지를 쓰는 일에서였다.

 

그 편지를 쓰면서, 글을 쓰는 일이란 때로는 숭고했고, 우아했으면서도, 많은 감정의 갈기를 다듬고 빗는 작업이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얼굴을 내밀어 말이 되어 튀어나오고, 그것이 활자의 형상을 갖추면서 순식간에 실상 공백이 무엇이었는지 정의하고 정돈한다.

 

잠시 혼자 생각하며 쉴 자리를 내게 허락해주는 일.

 

어쩌면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기로 둔 한 분의 말처럼 '일기를 매일, 꾸준히 쓰는 일'이야말로 스스로에게 주는 '현재'와 같은지도 모른다. 

 

누구나 글을 쓰는 목적은 다르지만 나는 나를 살리기로 했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 1992년부터 2100년 사이에 일어난, 지구 위에서의 일.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2000년의 시작에 있던 저널리스트 Po Bronson 뿐만 아니라, 삶의 과도기에 맞닥뜨렸던 사람들이 가져온 질문이다.

 

어떤 끝에 내몰린, 궁극에 닿은 듯한 어떤 답답함, 이것을 풀어내면 다소 완전해지는 것 같은 정답이 없어보이는 질문이다.

 

최적해를 찾아갈 수 있는 방정식처럼 보이지만, 때로 그렇게 인지적으로 내린 결정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변수로 덫이 되기도 한다.

 

'아닐 것 같다'는 본능적인 직감과 일상의 감옥을 벗어난 상상력을 따르라는 명령도 울림이 있으니 말이다.

 

일단 저지른 다음에 생각하라는 조언이 일례다. 망쳐도 피벗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첫 발을 디딘 곳이 앵커가 되기도 한다. 진화론적 논점에 부합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왜.

What to do, How to do, but Why.

 

의문을 확장시킨 세 가지 질문은 앞으로 되돌리기 어려운,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결정을 촉구한다. 

 

When, Where의 질문의 답은 '지금 여기'에서부터로 실상 정해져 있다고 하자.For whom, Who의 질문의 답은 나를 상수로 두고, 확장되는 타자(협력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부터 후세의 자연까지)를 포섭변수로 두고 있다.

 

물음을 던지던 사람들은 강조점이 달랐지만, 자신을 '어느 환경에 어느 자리에 포지셔닝 할 것인가'로, '어떤 자신의 핵심역량을 발휘할 것인가'로, 일생에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비전/소명이 무엇인가. 왜 이 때 이곳에 존재해야 하는가'로 각각의 질문을 바꿔쓰기도 했다.

 

이쯤되어도 한참의 모호함이 남는다.

 

BM 캔버스를 만든 Alexander Osterwalder의 아이디어에서 착안해, 사람은 결과론적으로 '누구나 각자의 밥줄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BM 캔버스에 표현해볼 수 있겠다. 물론 9가지 셀에 담긴 수십가지 질문에 답하다보면 그게 만일 정답은 아닐지라도, 느끼고 알게될 것이다,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누락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근접하는 한편 오류와 중복의 문제는 놓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오류로 보일 만한 것이 삶에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겨드랑이에 끼고, 밥줄로 표상된 양의 척도 외에도 질적 척도로 범주 혹은 나아가 서열을 매겨 시각적으로 캔버스에 구조화하는 일은 어떤 청사진이 되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포착해서 그려낸 그림은 그 순간의 어떤 착상의 스냅샷일 뿐, 시간의 흐름을 종적으로 담아내기 거의 불가능하다.

 

이처럼 쉼없이 바뀌고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모호하고 한 것들의 축제(VUCA)에서 어쩌면 확증되지 않은 것을 버리는 판사의 태도보다 확증되지 않은 것을 껴안는 예술가의 태도가 되레 쓸모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 방법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

 


 

한편 인간이 일생동안 무슨 일을 해왔는가, 특히 더 나은 일을 위해, 더 큰 가치를 얻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이력을 커리어라고 하자.

 

경영 컨설턴트 Rosabeth Kanter 교수는 30여년간 관찰한 결과, 예외없이 3개의 커리어 단계가 있다고 봤다.

1. 빌딩 들어가기 : 자신의 지식과 스킬을 증명하고 진입하고 소속하는 단계.

2. 테이블에 앉기 : 의사결정 권한을 갖고 조직과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 

3. 빌딩 나오기 : 조직과 구조를 벗어나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단계.

 


목적적 최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파벌에서는 맹목적이기에 방황한다며, 즉 전진하는 한 목적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는 논점도 내세워진다. 

 

시장을 이루는 법인들의 가치파동의 궤적과 같이, 한 인간의 가치파동의 궤적도 단기적으로는 Random walk를 따르거나 Voting machine처럼 움직이고, 장기적으로는 전형적인, 불가피한 Life-cycle에 놓여있는 Weight machine일지도 모를일이다.

 

각자의 무기는 모두 다르지만, 거시적인 시대흐름에서 인간이 이루는 '가치상태표'를 상호비교해 증명된 바, 정량적 성취의 기저요인(Factor)가 존재할 수 있겠다.

 

2년까지도 걸릴 거란 예측과 달리 2020년 '언택트'(Social distancing) 기술은 Hype의 정점에서 Plateau로 급속히 이동했다.

 

남들이 모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사람이 만든 한, 사람이 모방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인식 하에), 과거를 분석해 미래의 흐름을 읽은 특별한 기술적 방법들은, 예를 들어 혼마 무네히사의 캔들부터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수학적 인공지능까지, 시간이 지나 예외 없이 결국 10분위 상위평균에 수렴했다.

 

하지만 상위평균에 수렴하는 일을 하는 삶이란 마치 지수를 이루는 종목을 추종하는 뿌려진 자산과 같이 분열적이고, 때론 떠밀려 가며, 길어야 3년인 '알파'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 고통스럽기에, 다만 혁신적 기술을 손익음하지 않은 열패의식과 무기력과 인지부조화상태를 벗어나려 발버둥치며 신포도라 위로하는 스스로에게 하나의 편향된 근거로 할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때문에, 덧붙여 무엇으로 '달리' 살고 있는가에 대한, 타인과 함께 어떤 요인을 추구를 하고 있으나 또 한편으로 따로이려는 욕망이 있는 한,  다수와 같이 망하는 것이 다른 길로 이루는 것보다 낫다며 조소한 John Keynes의 말마따나, 기저 요인을 찾아내는 것이 생의 전략이 될 수 있다.

 

물론 요인을 찾아 추구하는 일은 확률적으로 강성일 뿐, 백미러를 보며 운전하는 일이란 비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으므로, 야마구치 슈가 지적한 바처럼 검증된 요인(과거)과 심연에서 호소하는 직감(창조)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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