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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면접 이야기.txt

Jin_x 2021. 1. 15. 14:51

1. 망한 시작

간단한 자기소개를 요청했다.  (그토록 외운 걸 어버버..)

처음인가. 물으셨고, 후회없이 하라고, 면접자 또한 우리를 면접하는 것이라며 북돋우셨다.

솔직히 초반에 암담해졌었다. 이렇게까지 더듬다니, 문맹도 스피킹은 어느정도 할텐데.

일평생 없던 경험었기도 했다. 처음이었으니까.

 

 

 

앉아계신 분들도 당황했지만 어쩌면 그 자리에서 내가 가장 당황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압박하지 않았으나 생전 처음뵙는 분들에게 평가받고 있다는, 스스로의 압박감을 느끼면서.

재판장에 섰다는 느낌이었으나, 점차 같은 눈높이로 앉아주신 분과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으로 점차 달라졌다.

 

 

2. 4명의 선수

재차 긴장을 풀어주시며 묻고묻는 질문을 받으니 점점 시야에 네 분이 들어왔다.

지금와서 돌아보니 네 분의 스타일이 모두 달랐으나 어떤 조화로움이 있었다. 

 

특히 CEO께서는 노련하게 얘가 어떤 걸 준비해왔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끌어내주셨다.

많은 지원자를 다뤄보신 데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느껴졌다.

몇마디만 해도 간파당하는 느낌도 있었다. 그 마음이 들키는 것이 싫지 않았다. 당당했으니.

끄트머리쯤엔 나만 질문하는 것 같다고 웃으시면서 이사님과 인사팀장님께 질문을 권유하시기도 했다.

 

나도 그런 위치에서도 사람으로 대하며 그 사람의 가능성을 간파하면서도 자상한 어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서투른 모습이지만 '처음'인 사람에게.

 

 

 

점차 예상했던 질문들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답해야할지 생각을 정리해둔 것을 몇 가지 이야기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의 적막감이 숨막히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의 1년 간 방황기에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라든지,

'고등학교때부터 티셔츠 디자인에 있던 관심, PoD서비스에 대한 관심..' 얘기하게 될까 싶었던 얘기도,

'제품분석 유튜브'를 시험삼아하고 있는 것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하게된 얘기도 있었다.

 

마음이 좀 편안해진 것 뿐만 아니라, 돌아보니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주의깊게 들어주면서도 공감하고, 

느낀 바를 공유해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3. 뜨거운 1시간

 

 

#물음의 형식을 하지 않은, 투사적인 질문이면서도, 동시에 조언의 모습을 한.

한번은 신입사원에게 회사가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시고,

 

'모범답안이다.(묘한 그 뉘앙스가 있었다. 순간 눈치발동. 동의하시면서도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셨다는 뜻을 읽었다.)

... 몇 년도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들은 "쓸모가 없다." 열정도 중요하나, Grit(그릿)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업계에서 20년을 일하면 희소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메디컬 리서치여서 업계 맨파워가 희소한 편이다. 주변에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다는 얘기나, 내가 회사를 조사한 출처를 말씀드리는 중 '잡플래닛'을 언급했는데 한번 들어가봐야겠다며 관심을 가지셨던 것도 있었을 테다.)

 

전직원들 정성들여 키워놨더니 포기하고 튀더라 하는 그 "쓸모없음" 혹은 부질없음에 대한

경험섞인, 어떤 강한 불쾌감이 테이블에 던져졌고, 그게 내게 투사되게 하지 않기 위해,

끈질기게 매달려서 목표를 이뤘던 경험, 2가지를 제시해서 급한 불을 끄려고 했다.

- '3년의 인내, 지구력을 필요로했던 수험생활을 견디고 좋은 대학에 좋은 조건으로 입학한 경험 ',

- '학생 신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목표만 바라보고 끈질기게 밀어붙여서 포털사이트 탑에 기사를 올린 경험'

 

반응을 살피니 약간 빗나간 느낌도 있었으나,

그 걱정을 읽었고, 끈기를 가지고 일하겠다는 의지를 가졌다는 인상을 남긴 것만으로 만족해야했다.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조언으로 느껴졌다. 막바지에 이런 조언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표시했다.

 

 

 

#라포르(Rapport)를 빌드업(承)해 로열티를 측정하는 반전의 질문(轉)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취업을 해야하니 그걸 위해

돈이 급하거나 당장 일자리가 필요해서 회사나 직무에 대한 로열티 없이 지원하는 것 아니냐'하는 질문도 있었다.

이 질문 이전에 라포르를 느끼게 하는 빌드업이 있었다.

마냥 사적인 질문이 아닌, 로열티를 묻는 질문을 하기 위한 설계 혹은 반전포인트였구나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든다.

 

- "취업이 급했다면 졸업을 앞당기고 바로 취업을 했을 것이지만,

- 그렇지 않았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우고 세상물정을 아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 여러 책을 탐독했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리고 좋아해온 일이라는 말과 그 근거를 말씀드리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어느정도 납득하시는 모습이어서 조금 다행스러웠다. 

 

 

 

#겸손을 측정하기 위해 면밀하게 설계된 이중질문

"자소서가 (퀄리티가 괜찮은데) 요즘 다른 대학생들도 이러냐, 왜 이렇게 쓸 생각 했느냐, 얼마정도 걸렸느냐"

(이 칭찬에는 그동안 친척 어른들과 대화하며 만들어온 '얼버무리는 웃음'으로 부끄러움을 무마하려했고, 면접 보시는 분들이 어떤 질문을 가질까, 어떤 게 궁금하실까하면서 썼다는 취지로  과정을 말씀드렸다.)

"지원한 너처럼 뛰어난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없기도 하다. 어떻게 인간관계 관리하느냐"하면서

(뜸들이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하는 취지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렸다. 헉 생각해보니 감사하다고 안했네.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는 거 인정한 거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이런 이중질문으로 겸손한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도 하셨다.

 

칭찬에 '헉 좋은 신호다'하고 살짝 방심해서 돌아보면 좀 낚인 것도 같다.

자기에 대한 과대평가(Grandiosity)를 가진 사람은 어느 집단에서나 기피대상이다. 나도 그런 사람 별로고, 내가 그렇게 재수없어 보이기도 싫다.그렇다고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칭찬을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 

 

따라서 직접적인 칭찬에는 일단 좋게 봐주셔서 감사한 태도를, 비판에는 배우고 개선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맞았다.

전자에서 보다도, 후자에서 그 태도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 같다.

답변 중 후자 취지의 말씀을 드리면서 '겸손하기까지 하네..'하며 확인사살겸 재차 반응 파악하는 말씀에,

"하핫 감사합니다"하고 대답했다. 다행히 통과한 것 같았다.

 

당시엔 감정선을 읽으면서도 답변을 조리있게 어떻게 말씀드릴까하며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 복기해보니 치밀하게 설계된 질문들이었다.

 

사실 겸손하기까지 하구나하며 칭찬하시는데 그 말씀에 작은 웃음으로 답변하면서도

양손 바닥으로 눈을 비비며 신체적으로 스스로 달래는 몸짓(Calming signal)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말았다.

 

손동작이 혹시라도 부정적인 신호로 해석될까봐

(예를 들어, 부풀리는 것처럼 보인다든지, 아닌 걸 둘러대려고 손을 휘젓는 것처럼 보인다든지)

누구에게든 몸동작이 의도와 달리 보일까봐 어떤 손동작이든 제어하는 편인데,

이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으로 괜히, 외려 내가 진심임을 알아주셨을 것 같기도 했다.

 

바로 간파할 수 있는 행동신호를 보여드렸던 것에 후회는 없다. 진심이었으니까.

사실 눈을 마주치시다가도, 몸의 자세, 손 동작, 눈의 움직임, 입의 움직임을 모두 읽고 계실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중간중간 손을 쳐다보시기도 했다. 거슬렸을까 싶어서 슬쩍 제스쳐 내리고)

 

행여 거슬릴까, 어찌 해석될 것인지 나도 FBI 행동 프로파일링 책 몇 권 읽어서 교양수준으로야 알지만,

심리학을 전공하신 분이 두분이나 계시니 어떤 몸의 움직임도 해석을 피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긴장이 뇌의 뒷편에 계속 있었다.

사람 읽는 내공 앞에서 내가 뭘 지어내는 것보다 그대로 보여드리는 게 어쩌면 나은 방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의 형식을 하지 않은, 위악(爲惡)적 스트레스 테스트

이사님께서도 "포부가 이러한데, 리서치 산업에 대해 뭘 알아야지..."

(어떤 의도적인 위악적인 깎아내림에 대한 반응을 보시려는) 말씀을 하셔서,

눈을 맞추면서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배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하며

바로 그 질문(물음의 형식은 하지 않았으나 그 불편을 느끼시는 부분에 대해)에 답했다.

 

이렇게 면접관분들께서 세 네개 정도 스트레스 테스트처럼 찌르는 질문들을 하시기도 했다.

 

 

 

#그 놀라운 1분

특히 중후반에 "이 친구가 서류를 보낸 방식부터 마음에 든다."

(자소서를 보내드린 경위, 자료를 보내는 시점을 확정하고, 충실하게 쓰면서 읽는 분의 편의에 맞춰 내용을 구조화하고, 문자로 즉각 보고하고 불확실함을 없애는 방식에 대해 만족하셔서 다행이었다. 확인받고 칭찬받은 기분.)

나를 어떤 경위로 알게됐는지, 은사님의 제자모임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절대 내 입으로 먼저 말할 수 없는,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언젠가는 잠시 그 관계를 가볍게 생각했던 나를 혼내고 싶은. 나중에 이야기할 일이 생기길. 교수님께 정말 빚을 졌다. 어떤 면에서는 나를 건지신 셈이다. 감사하고 죄송함을 아실까 모르겠다. 은사께 부끄러움 없는 인간되겠다고 약속드렸다.)

 

내게는 정말 힘이 되는 변호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세 분께도 이 사람과 일할 것이 그려짐을 강력하게 설득하는 장면이었다.

당장 내가 어떤 말을 덧붙이는 것이 해가될 정도의 1분이었고 감사하면서도 놀라웠다.

내가 아닌 객관적인 입장에 선(w/ a weak tie) 다른 사람이 나를 지지할 때, 그 강력한 WoM의 힘을 느꼈다.

모두가 그 말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 한 방에 그 공간의 공기가 확실히 달라짐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관조하는 디케'의 촌철

(부)회장님(재무상태를 분석하면서 대주주셨던 것으로 기억)은 단 몇 가지 핵심적인 질문을 간결히 주셨고, 대답하기 쉽지 않았다.

쭈욱 들으면서 뇌리에 들어오는 말을 메모하시면서도 몇 개 워딩을 짚으시면서 인상깊다고 짚어주셨다.

기업문화에 대한 답변 중 내가 느낀 '품위'에 대한 말을 듣고 인상깊다며 짚으시고 짧게나마 어떤 생각을 하시는 듯도 했다.

 

목소리 좋다는 말 듣지 않느냐며 돌려서 수사적으로 칭찬도 해주셨고,

출근 바로 할거냐는 질문에서도, 함께갈 것이라는 어떤 분명한 배려 섞인 신호를 느꼈다.

아닌 듯 보이지만서도 어떤 구성원에게든 애정을 갖고 지켜보시겠구나하는 인상을 느꼈다.

틈틈이 아이컨택하시다가도 눈을 감았던 이유는 내용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 였음을, 돌아오는 길에 뒤늦게 깨달았다.

 

 

 

#숨은 조정자

인사팀장님께서는 오프닝과 클로징 그리고 중간중간 몇가지 부드러운 어조로 날카로운 내용의 질문을 해주셨다.

유튜브에 등장하는 면접왕 이형이나, 인싸담당자, 강민혁 같은 분들처럼 어떤 채용 전문가들의 인상과 겹쳤다. 

자기소개로 시작하는 점이나, 자기계발이나 그런 업무와 관련된 책 말고 다른 특기가 있느냐는 질문과 같은 것들.

예측할 수 있지만 당장 그 순간에 조리있는 답변을 떠올리기에는 약간은 막막한,

'준비성이나 성실함', '차별성 혹은 의외성'을 파악하려는 질문을 하셨다. 

 

중간에 (부)회장님께서 어떤 코멘트를 남기셨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아마 의도파악하느라 내용을 잊은 것 같다)

잠깐 벙쪄서 어떻게 반응해야되나 살짝 혼란이 왔을 때, "칭찬하신 거예요"하며 반응의 방향에 도움을 주셨다. 감사했다.

 

면접을 마치고 나가는 길을 안내해주고 엘베도 잡아주시면서,

"프레시했다. 준비한 걸 다 못했다고 해도, 서투른 모습조차 지원자의 '신선함'이었다.

후회하지 않아도 좋다. 모두 지원자의 이미지였다. 긍정적이었다. 좋은 결과 있으면 다음에 또 보자."고 피드백주셨다.

약간 자책하면서 멘탈이 반쯤 나가있었는데 감사하면서도

사실 '이곳을 미워하지 말라는 의도에서 하시는 말씀이실까'의 자격지심도 없지 않았다.
집에오는 길에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받은 합격소식을 귀띔받고, 뜨거운 몸을 안고 집에 도착해서는 풀린 긴장에 허리 근육부터 해서 몸살이나기도 했다.

 

붙고나서야 확실해져서(ㅋㅋㅋ)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더 없는 위로였고,

"너 그래도 괜찮게 잘 했어"라는 칭찬이었고, 진심이구나느꼈다.

지금 돌아봐도 그 마음이 참 감사하다. 나도 그런 진심으로, 누군가를 설레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날이 올거라 믿는다.

 

 

 

4. 돌아보니 인생에서 체크포인트였다.

 

 

#느끼지 못했던 종류의 감사함

실무자와 임원의 동시면접이 아니었다면,

교수님의 추천으로 기회를 얻은게 아니었다면,

그날이 오기 전 마음을 얻기 위해 자소서를 쓰고 면접까지 만났던 것들이 없었더라면,

내가 살아오면서 읽고 들으며 배운 것들이 나의 말이 되어 나올 수 없었을 거다.

 

내가 풀었던 말의 흔적을 머릿속으로 되짚다보니, 나에게 말을 선물했던 사람들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정말 사람은 빈손으로 와서, 그 모든 것을 빌려쓰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종류의,

나를 겪어낸 사람들에 대한,

시간의 조각들이 모인 모습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느껴진다.

 

 

#일과 사랑. 혹은 '직장과 결혼'. 인생의 두 중요한 결정.

'유학이 아니라 일을 시작했고, 지금 돌아보니 후회없는 선택이었다.(나도 너와 같은 고민을 했었다)',

'여기(너를 소개한 글)에 적어둔 너의 마음(초심)을 잃지 말라'는 대표님의 말은

저 멀리의 시간에서 나의 시간을 초월했으나, 나와 같은 공간에 필연히 맞닥뜨린 접점에서 던져진 메시지였다.

자신이 먼저 겪으며 걸어온 길을 정리하는 어떤 유표(遺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 손에 쥐어진 지도이니, 어느 길 위에서든 간직하고 다시 꺼내보며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쓰게됐다.

 

그리고 내게 위로해주고 싶다.

처음치고, 그래도 잘 해냈다고.

감내해야했던 시간들은 존재 이유가 되어줬다고.

어떤 길에 있든 앞으로 잘 하자고.

아무튼 수고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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