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韓探】 김기춘에서 이준석으로, '능력주의'라는 새로운 파시즘 본문

재밌는 한국 탐구

【韓探】 김기춘에서 이준석으로, '능력주의'라는 새로운 파시즘

Jin_x 2022. 9. 10. 05:34

때로 처음부터 끝까지 끝내줘서 허투루 흘려보내기 힘든 컨텐츠들이 있다.

 

지난 대선에 왜 졌는지 분석한 민주당 대외비 보고서(오마이뉴스 보도)나,

혐오가 정치적 자산이 되어 선거에 승리하고 있다는 여러 연구보고서들과 책들. 


 

소위 '공정'한 경쟁 환경에서 '능력'은 성과를 입증하는 수단이었다.

최근 10년 간 한국에서 '능력'이라는 가치는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기준으로 '진화'했고,

지난 대선에는 지배이념으로까지 등장해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다.

 

성과를 인정받는 노력(능력)이 ‘정상성을 갖춘 보편인간’이 되는 기준이 되어 견고한 사회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능력주의적 공정성이 지배적 가치관이 되며 우리 사회에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빈자들은 사회적으로 차별받거나 사회 밑바닥에 자리 잡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런 능력주의적 공정성이 차별과 혐오를 대규모로 동원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 김만권, <'혐오의 정치학'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와 해법>

 

여성 혐오에 기댄 반여성 기치로 '이대남' 타겟의 혐오를 수면 위로 결집.

장애인 혐오에 기댄 반장애인 포지셔닝으로 '비장애인' 타겟의 혐오를 수면 위로 결집.

 

특히 여성 혐오 결집과 그 반작용은 대선에서 새로운 정치적인 지형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보이듯 한쪽의 정치적 입장으로 채택된 집단에 대한 혐오는

투표성향의 양극화로 이어졌고 양당의 정치적인 자산이 됐다.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수면 위로 끌어올린 여성,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혐오지형 외에

이 이전에는 없었나? 지금은 없나?

 

&ldquo;우리가 남이가&rdquo; 초원복집 모의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는 김기춘

호남이냐 영남이냐 출신 지역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71년 대선 이후 여전히 양당의 정치적 자산이다.

 

소위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고 비판받는

'전략공천(충성도에 따라 꽂아주는)'의 대상이 되는 그 안전지대.

 


 

 

국가의 독립을 위해 투신한 선대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야 하는 것은 맞는 얘기.

 

하지만 민주당에서도 소위 '반일이냐 친일이냐'하는 하나의 강력한 프레임으로

일본에 대한 혐오를 결집시켜 총선을 치르고, 대선을 치렀던 것 또한 사실이다.

 

Y모 의원은 그 페르소나 중 하나였고, 현재 용도폐기 됐지만,

한번 습곡이 생긴 곳에 벌써 계곡이 들었고,

좌우 커뮤니티 간 표현 지도를 보더라도 일상에 스며든 것을 확인할 정도.

 

차별과 혐오를 정치적 자산화했다는 비판에서 양당이 모두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문대통령이 추천했던 <짱깨주의의 탄생>을 비롯한 여러 서적에서도

'친중이냐', '종북이냐'하는 잣대로 혐오를 결집시키는 정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장애인이 출근에 방해된다"는 취지로 이준석이 얼마 전 띄운 장애인 혐오도

 한 풀 지나가면, 새로운 혐오의 열과 압력이 또 새로운 지형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남은 것은 '월거지', '전거지', '엘사', '휴거', '이백충', '삼백충', '기생수' 등의 언어로 보이는 빈자혐오,

'ㅇ린이', '노키즈존'과 같이 미성숙함을 조롱하는 조어로 빗겨 보이는 어린이에 대한 혐오,

세대 간 혐오, 성소수자 혐오, 이주민 혐오, 정신질환자 혐오 등이다.

 

 

 

경쟁의 외부요인인 공정함과 내부요인인 유능함은

기실 정치적 수사에서 제1의 가치인 듯 포장되어가고 있다.

 

특히 '능력'은 단순한 가치를 넘어 정상이냐, 보편이냐 차별하고 배제하는 이데올로기로 진화하고 있다.

그 때문에 포용하고 배려하는 따뜻함이라는 가치는 담론지형에서 수면 아래로 사라지고 있다.

 

강함, 유능함을 따라내세워 포지셔닝하고 있는 진보진영,

'능력주의'를 내세워 혐오를 적극적으로 결집하고 있는 보수진영을 보면

약한 능력주의냐 강한 능력주의냐의 차이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민생'이 정치적 의제로 전면에 등장한 것은 기쁘다.

구닥다리 물건을 다락방에서 다시 꺼낸 듯한 단어라 어감이 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떻게 한 사람 사람의 니즈를 파악해서 실질적인 이익이 가게할 것인가라는 의미와 더불어

정치라는 과정에서 기회와 과정의 불평등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보태주자는

돌봄, 배려, 포용과 같은 가치가 유능함과 능력주의에 맞서는 양태라.

 

근데 이게 정당 간 차별화 포인트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차갑고 유능한 사람은 끌리지 않지만 사무적으로 따르게 되고,

따뜻하고 유능한 사람은 끌려서 자발적으로 따르게 된다지만,

결국 한 시즌이 지나면, 다시 갈라치고 구별짓는 정치적 수사가 범람할 것이다.

 

 

도, 천, 지, 장, 법이라는 5사를 생각하면,

그 지역의 기후를 조성하는 것도 지형,

그 지역의 사람과 제도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도 지형.

 

선거를 앞두고 또 어떤 지형을 또 만들려 할지.

어떤 파시스트가 또 등장할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