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日本探求】 야스쿠니신사참배를 대하는 차가운 태도에 대하여 본문

즐거운 일본 탐구

【日本探求】 야스쿠니신사참배를 대하는 차가운 태도에 대하여

Jin_x 2022. 10. 26. 11:51

야스쿠니 신사에는 5만 여명의 한국이나 대만 출신 군인 등 인물이 일본명의로 합사되어있다.

 

야스쿠니신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잔재가 깃든 상징이 되어있다.

 

식민사관에 젖어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보수 정치인들의 필수코스다.

 

최초로 제2차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기 시작한 총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였다.

 

첫 한일 정상회담을 전두환과 가졌던 그 인물(1982~1987). 

100세를 넘기도록 장수. 자민당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보수 페르소나였다.

 

이어서 한국에도 익히 알려진 5년 넘게 장기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2001~2006).

DJ, 노무현 민주당 정부 시기를 냉온 무드에서 함께 했다.

북한의 김정일과 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일본인납치문제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기도.

 

고이즈미 총리는 재임 중에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총리별(나카소네, 고이즈미) 아사히와 요미우리의 논조 변화

지피지기.

일본 내부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헌법문제, 역사인식, 외교문제 3가지 면에서 좌(아사히)-우(요미우리) 논조를 확인해 볼 수 있다.

 

헌법문제 상으로는

아사히는 나카소네 시기(80년대)를 지나 고이즈미 시기(00년대)로 변하면서

헌법상 '적극적 위헌론'에서 '소극적 위헌론'으로 바뀌었다.

한편 요미우리는 '위헌 소지 있음'에서 '헌법상 문제를 부정'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역사인식 상으로는

아사히는 '야스쿠니의 본질(천황숭배 등)'을 강조하다가 언급하는 정도로 바뀌었다.

한편 요미우리는 'A급 전범 합사를 반대'(요미우리의 독재자 와타나베 츠네오의 소신) 하다가

합사를 긍정하고 역사관을 옹호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Comments